[단독] "조 단위 배터리 업체로"…고려아연·LG화학, 내달 합작법인 설립

울산 온산제련소에 공장 건설…“兆 단위 배터리 업체로 키운다”
마지막 퍼즐 맞춘 국내 화학·비철금속 절대강자의 ‘배터리 동맹’
광물부터 원재료, 배터리까지 이어지는 공동 밸류체인 완성
LG화학과 고려아연이 2차전지 양극재 핵심소재인 전구체를 생산하는 합작법인을 다음달 설립한다.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LG화학은 배터리 핵심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고려아연은 신사업 진출을 확대하기 위한 ‘윈·윈’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고려아연은 내달 초 공동으로 지분을 투자하는 전구체 합작법인 설립 본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지난해 7월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지 10개월 만이다. 합작법인 자본금은 2000억원으로, 고려아연이 지분 60% LG화학이 40% 가량을 보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본계약 체결식엔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이 참석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합작법인은 올 하반기부터 고려아연의 울산 온산제련소 인근 부지에 전구체 생산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의 자회사인 켐코로부터 황산니켈을 공급받아 가공 작업을 거쳐 전구체를 생산한 후 LG화학에 공급할 계획이다. 전구체는 양극재 재료비의 70%를 차지하는 핵심 원재료다. 특히 니켈은 전구체 원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이다.

두 회사 관계자는 “원재료인 황산니켈부터 전구체와 양극재 및 배터리 완제품 등 모든 생산과정을 잇는 ‘배터리 동맹’이 완성됐다”며 “전구체 합작법인을 조(兆) 단위 매출을 올리는 대형 소재업체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LG화학과 고려아연의 전구체 합작법인 설립은 두 회사의 배터리 밸류체인(가치사슬) 협력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동시에 국내 배터리 산업의 판도를 흔드는 대형 사건이라는 평가다.
LG화학 구미 양극재 공장 조감도
각각 국내 화학·배터리 소재 및 비철금속 시장의 절대강자인 LG화학과 고려아연의 ‘배터리 동맹’이 전구체 생산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광물인 니켈과 원재료인 황산니켈(고려아연)부터 전구체(합작법인), 양극재(LG화학), 배터리 완제품(LG에너지솔루션)으로 이어지는 두 회사의 완벽한 밸류체인 협력이 완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싼 값에 원료 안정적 확보”

24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고려아연은 지난해 7월부터 진행된 합작법인 설립 협의를 마무리짓고, 내달 초 본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두 회사 관계자는 “올 초에 이미 큰 틀에서 합작법인 설립에 대한 합의를 이뤘다”며 “세부 사항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늦어졌다”고 밝혔다.합작법인은 본계약 체결 이후 즉시 고려아연 울산 온산제련소 부지에서 전구체 생산공장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다. 합작법인 생산공장은 고려아연 자회사인 켐코로부터 황산니켈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2017년 11월 설립된 켐코는 35%의 지분을 보유한 고려아연이 최대주주로, 온산제련소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LG화학도 이 회사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자회사인 코리아니켈이 광물 상태의 니켈을 제련하면 이를 켐코가 가공하는 방식이다. 아연·납 생산량 기준 세계 1위 제련업체인 고려아연은 제련과정에서 연간 150만t의 황산도 생산하고 있다.
황산니켈
신설되는 합작법인은 황산니켈을 가공해 전구체를 대량 생산한 후 LG화학의 양극재 자회사인 LG BCM에 공급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LG화학은 켐코로부터 공급받은 황산니켈을 협력사에 맡겨 가공하는 과정을 거쳤다. 앞으로는 합작법인이 자체 물량을 처리하면서 안정적인 공급이 보장될 뿐 아니라 비용과 시간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LG화학의 설명이다. LG화학은 공급받은 전구체를 앞세워 양극재 연간 생산 규모를 작년 8만t에서 오는 2026년 26만t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은둔기업 이미지 벗는다”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
고려아연은 이번 합작법인 출범을 계기로 아연·납 제련기업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배터리 소재분야로 사업을 대폭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산업 사이클을 이겨내는 기업’이라는 별칭처럼 2006년 이후 매년 1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다. 작년엔 1조96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1974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클럽’에 가입했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아연, 납 가격 상승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과 은 등 부산물 수입도 상당하다. 고려아연의 작년 매출 중 아연과 은 비중은 각각 31.8%와 29.0%에 달한다. 작년 말 기준 현금성 자산도 2조원이 넘는다.

고려아연은 지금을 새 성장동력에 적극 투자할 시기로 보고 있다. 최윤범 부회장은 비철금속 제련회사라는 틀에서 벗어나 배터리 소재를 비롯한 신성장 동력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규모에 비해 기업의 주요 정보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아 ‘은둔의 기업’으로 비춰졌던 이미지도 탈피하겠다는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오너 3세’인 최 부회장(1975년생)이 2019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광모 LG 회장
LG그룹과 고려아연 오너 일가의 두터운 친분도 ‘배터리 동맹’을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광모 LG 회장의 부친인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과 최 부회장의 부친인 최창걸 명예회장은 오랜 기간 가깝게 지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 대에서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 관계자는 “고려아연 사무실에는 LG 가전제품만을 들여놓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라며 “오너 일가 간 두터운 친분도 합작법인 체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