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굴기' 김창수의 테일러메이드 딜레마

F&F, 사모펀드와 공동 투자
이사회에 아직 참여 안 해

테일러메이드 '몸값' 급등
경영권 가져올 땐 가격 부담
단순 투자자로 남기에는
F&F 사업 다각화 차질 우려
김창수 F&F 회장(사진)의 꿈은 ‘패션 굴기’다. “패션으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MLB 등으로 중국에서 성공한 브랜드 라이선스 전략은 F&F 투자자들의 무릎을 탁 치게 했다. 패션과 무관한 브랜드를 들여와 패션으로 둔갑시킨 전략이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서다. 투자업계에서 김 회장에게 ‘헌정’한 별명은 ‘갓(god)창수’다. 지난해 7월 센트로이드PE와 공동으로 테일러메이드를 인수한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F&F 주가는 발표 직후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시장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F&F 주가가 올 들어 줄곧 하락세다. 테일러메이드 투자 전략이 미궁에 빠진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회장은 예상과 달리 투자 발표 후 1년이 다 돼가는데도 테일러메이드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F&F 관계자는 24일 “재무적 투자라는 것 외에 더 이상 설명할 게 없다”고 말했다.

미국 ‘골린이’ 사로잡은 테일러메이드

골프·패션업계에선 김 회장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테일러메이드의 몸값이 너무 빠르게 오르고 있는 것이 그를 곤란에 빠트린 핵심 요인이다. 계획대로 경영에 참여해 의류 등 테일러메이드의 사업 영역을 확장하자니 2~3년 뒤 사모펀드에서 경영권을 가져올 때 가격이 너무 오를 것 같고, 단순 투자자로 남기엔 F&F의 사업 다각화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미국에도 골프 열풍이 불면서 지난해 테일러메이드의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는 2억2000만달러(약 2600억원)로 전년(1억1300만달러) 대비 두 배가량으로 증가했다.

김 회장은 센트로이드PE가 조성한 펀드에 참여할 때만 해도 “테일러메이드를 골프를 뛰어넘는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잘 아는 패션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의 최종 꿈은 나이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이키는 단순한 신발 브랜드가 아니라 거대한 팬덤을 기반으로 수요를 창출하는 대형 마케팅 기업으로 평가받는다.테일러메이드 인수는 윤윤수 휠라홀딩스 회장에 대한 청출어람이란 측면에서도 김 회장에게 각별하다. 윤 회장은 2011년 타이틀리스트 등을 보유한 아쿠쉬네트를 미래에셋PE와 공동으로 인수했다. F&F는 프로야구 리그조차 없는 중국에서 MLB가 대박을 터트렸듯이, 테일러메이드 브랜드를 골프 외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할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참여 차일피일 미루는 F&F

김 회장의 테일러메이드 투자는 휠라홀딩스의 선례를 벤치마킹했다. 형식은 비슷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구조가 확연히 다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 지분을 회수해 경영권을 온전히 가져올 때 인수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느냐가 결정적인 차이”라고 지적했다.

아쿠쉬네트는 윤 회장이 사실상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거래 자체를 휠라가 주도한 터라 미래에셋PE의 아쿠쉬네트 지분을 우선 매수할 권리뿐만 아니라 인수 가격도 사전에 정해놨다. 테일러메이드 거래는 정반대다. IB업계 관계자는 “센트로이드PE가 테일러메이드를 보유한 미국 사모펀드와 딜을 성사시킨 다음에 경영을 함께할 전략적 투자자를 물색했고, F&F가 최종 낙점된 것”이라고 설명했다.IB업계 관계자는 “약 2조원의 테일러메이드 인수금 중 F&F는 5000억원을 부담했는데 이 중 2000억원은 단순 대여에 가까운 채권 투자이고, 지분 투자는 3000억원”이라며 “김 회장이 테일러메이드 지분을 50% 이상 획득하기 위한 우선 매수권을 갖고 있지만, 인수가는 상장 후 시장가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센트로이드PE는 1~2년 안에 테일러메이드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