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바뀌는 공시 가이드…"일을 위한 일 만드나"

상장사 공시 업무 기피 현상

업무 효율성 떨어지고 혼란 가중
실수하면 끝장…스트레스 높아
“상장사 공시 관련 가이드라인이 너무 자주 바뀝니다. 경영 투명성 강화란 취지는 알겠지만, 기업으로서는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대기업 기업설명회(IR)팀 공시담당자 A씨는 정부가 기업 공시 관련 제도나 가이드라인을 수시로 바꾸는 바람에 너무 정신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일을 만들어 기업을 괴롭힌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라고 말했다.24일 주요 상장사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2020년부터 기업 공시 관련 크고 작은 가이드라인을 수차례 변경했다. 주주 편의성을 높이거나 경영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규제가 까다로워진 게 대표적이다. 금융위는 올해 ‘기업 소유 구조 또는 주요 사업 변경 관련 주주 보호 방안’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신설했다. 합병, 영업양수도, 분할(물적분할 포함), 주식의 포괄적 교환 및 이전이 있었거나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면 주주 보호 방안 또는 계획을 설명해야 한다. 주주 환원 전략 같은 주주 전체에 대한 소통 방안 외에도 “소액주주와 간담회를 하겠다”는 등 소액주주와의 의사 소통 사항을 별도로 기재하도록 했다. 기업의 중요 정보를 소액주주에게도 적극 제공하라는 의미다.

주주총회 소집일 관련 안내 가이드라인도 바뀌었다. 상법엔 주주총회 소집일 2주 전 서면통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개정한 가이드라인엔 주주총회 관련 최소 4주 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준수하지 못하면 그 이유와 계획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제출 대상도 올해 자산 규모 1조원 이상 법인으로 변경됐다. 기존 2조원 이상에서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2024년부터는 5000억원, 2026년부터는 모든 상장법인이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금융위는 이 같은 가이드라인 변경으로 기업의 내부 통제 및 경영 투명성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상장사들은 “공시 가이드라인이 너무 자주 바뀌면서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실수할 가능성이 커져 고민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가이드라인 변경에 따른 혼선으로 공시 사항이 누락되거나 부실 기재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토로하기도 했다. 공시 위반으로 인해 감독당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에선 직원들이 기업 공시 관련 업무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