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우유' 출렁인 베네치아…세계 미술계 'M·I·L·K'에 꽂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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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비엔날레로 본‘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미술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올해 주제다. 여성 초현실주의 화가 리어노라 캐링턴(1917~2011)이 쓴 동화책 제목에서 따왔다. 캐링턴은 인간과 동식물 등을 합친 신비주의적 화풍으로 독자적 예술세계를 구축한 인물. 총감독 체칠리아 알레마니(45)는 “캐링턴의 그림처럼 ‘인간은 이래야 한다’는 편견을 부수고 약자와 ‘잡종’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세계 미술 트렌드 분석
Minority 소수 집단
전시 80%가 여성 작가
인종·성소수자·장애 문제 다뤄
Issue 전쟁·기후변화 이슈
美·獨, 우크라 전쟁 비판 메시지
양혜규는 기후위기 주제 그룹전
Local 출신 지역 서사 강조
스칸디나비안 3개국 '사미관'
보편성보다 역사·특성 내세워
Korea 한국 전시 역대 최고
별도로 전시 연 작가 10명 육박
수상 불발됐지만 강한
그의 말대로 비엔날레가 열린 ‘물의 도시’는 여성·흑인·식민지 출신·성소수자 등 ‘소수자(Minority)’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가득 찼다. 순수예술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변화 등 첨예한 이슈(I·Issue)를 다룬 작품이, 서양 강대국 등 주류의 시각보다는 지역(L·Local)의 특수성을 강조한 작업이 주목받았다. ‘미술 한류(K·Korea)’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이번 비엔날레가 세계 미술계에 던진 화두를 올해의 주제 ‘MILK’의 네 개 알파벳으로 풀었다.
Minority: 소수자, 미술 중심 주제로
이번 비엔날레 본 전시에 참여한 작가 213명 중 여성 비율은 88.2%(188명). 127년 역사상 이런 ‘여인 천하’는 없었다. 여풍(女風)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여성을 필두로 흑인, 성소수자, 장애 등 소수자를 다룬 작품이 주류(Majority)가 됐다. 그중 영국관(여성, 인종)과 루마니아관(장애, 성소수자) 등이 호평받았다.다만 본 전시와 국가관 전시작들이 비슷한 주제를 다룬 탓에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왔다. 20일 만난 한 미국 큐레이터는 “같은 작품이 반복되는 느낌”이라며 “병행 전시인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도 여성 작가들을 조명했지만, 파블로 피카소 등 남성 거장들의 작품으로 완급을 조절했다”고 말했다.
Issue: 반전(反戰)·기후변화 다뤄
공식 병행 전시 중 가장 긴 줄이 늘어선 곳은 두칼레 궁전에서 열리는 독일 표현주의 거장 안젤름 키퍼의 개인전이었다.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부청사 겸 총독 관저였던 곳이다. 키퍼는 궁전에 있는 거대한 방을 불탄 것처럼 보이는 옷 등 자신의 설치작품으로 채웠다. 세계 최고 고미술 갤러리스트로 꼽히는 파예즈 바라캇 바라캇갤러리 회장은 기자와 만나 “전쟁과 기후변화 등에 대한 슬픔과 변화에 대한 의지가 녹아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국가관이 있는 자르디니 공원 미국관 앞에는 흰 모래 포대를 한가득 쌓은 작품 ‘우크라이나 광장’이 들어섰다.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비엔날레 측 작품이다. 양혜규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그룹전을 펼치고 있다.
Local: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
각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살린 작품도 눈에 띄었다. 유럽관은 올해 간판을 ‘사미(Smi)관’으로 바꿔 걸었다. 사미는 노르웨이·핀란드·스웨덴 북부에 사는 소수민족의 이름이다. 전통의 공유와 공존을 모티브로 했다.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여성 화가 마를린 뒤마가 연 회고전에서도 지역의 맥락을 담아낸 작품들이 걸렸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정책을 피해 네덜란드로 망명한 그는 뒤틀린 이미지를 통해 흑인들의 고통을 표현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5·18민주화운동을 미학적으로 재조명한 ‘꽃 핀 쪽으로’ 전시를 열고 있다.
Korea: 미술 한류
본 전시 참여 작가인 이미래와 정금영, 각각 개인전을 연 하종현·전광영·이건용·배병우, 각기 다른 그룹전에 참여한 박서보·양혜규·오명희…. 여기에 한국관 ‘대표 선수’인 김윤철 작가를 더하면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한국 작가는 10명에 육박한다. 미술계 관계자는 “미술 강대국에 밀리지 않는 규모”라며 “한국 미술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지난 21일 찾은 박서보 그룹전에는 론티 이버스 아만트재단 대표 등 세계적 컬렉터들이 찾았다. 전광영 개인전이 열리는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냑 앞에도 긴 줄이 늘어섰다. 미국 출신인 한 큐레이터는 “큐레이터들 사이에서 꼭 봐야 하는 전시란 소문이 났다”고 했다. 한국관도 헝가리 루드비히 뮤지엄을 비롯한 여러 미술관의 전시 제의를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베네치아=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