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틀 깨는 파격·도전정신 필요"

반도체 전문가 출신 인수위원의 자기성찰

"현장 전문가들과 교류·소통 힘써야
큰 사고 안 내는 안전운행에 신경써"
“전반적으로 안전 운행에 신경 쓰는 분위기입니다. 큰 사고가 나지는 않겠지만 기존 틀을 깨는 파격이나 도전정신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웅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인수위원은 지난 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IT쇼 2022’ 전시회에서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약 한 달간의 인수위 활동에 대해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직 인수위원이 내부 의사결정 과정 등에 대해 공개적인 평가를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유 위원은 ‘파격과 혁신이 없는 이유’에 대해 “인수위의 다양한 전문가가 핵심 아젠다 한두 개를 놓고 논쟁해서 복합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시도와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실물경제와 인더스트리(산업)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장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교류해야 한다”며 “월드IT쇼를 따로 방문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격과 혁신적인 해법을 찾기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도 “인수위원들이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 위원은 지난 20일 월드IT쇼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광주 방문에 동행하면서 불참했다.

그는 24명인 인수위원 중 유일하게 국내외 대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미국 간판 반도체기업인 인텔에서 10년간 시스템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다 2011년 삼성전자에 영입돼 모바일 반도체 연구개발(R&D)에 참여했다.이후 현대자동차의 미래차 개발담당 임원, SK텔레콤의 ESG혁신그룹장(부사장) 등을 거쳐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의 추천으로 인수위원이 됐다.

"삼성·SK 메모리 경쟁력 길어야 3~5년 유지"

유웅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인수위원(사진)은 ‘인수위가 다뤄야 하는 핵심 아젠다’를 묻자 주저 없이 “반도체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고 답했다.그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중심의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해 “앞으로 길어야 3~5년 정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 위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50%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거두는 것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예외적 상황”이라며 “앞으로 중국이 D램을 본격 양산하기 시작하면 영업이익률 10%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견제했기 때문에 반도체시장의 치킨게임이 잠시 미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위원은 한국의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정부가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최고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현재 산업 구조와 미래 기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인수위가 기업 의견을 듣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업계 의견을 받고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면서도 “현재 행정 여건 상 밀접하게 인터랙티브(상호작용)하는 구조는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유 위원은 “바로 옆에서 머리를 맞대고 앉아 협업하면서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 즉각적으로 디베이트(논쟁)해 결론을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민관 협업을 정경유착으로 낙인찍는 마인드셋(고정관념)이 민관협력이 잘 되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유 위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개혁안으로 공약한 민관합동위원회에 대해서도 평소 소신을 밝혔다. 그는 “(정부의 민관 위원회는 결론을) 다 짜놓고 한두 시간 회의를 열어 민간 의견을 형식적으로 듣는다”며 “그런 위원회는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 이어 민관합동위가 성공하려면 “민간 전문가들이 상근으로 일하면서 국가를 위해 몰입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계의 또 다른 화두인 ESG에 대해선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것”이라며 “정부는 환경, 사회와 관련된 난제를 풀려고 하는 벤처와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걸 핵심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가장 큰 사회적 난제로는 기후변화를 꼽았다. 유 위원은 “SK텔레콤이 2050년 ‘RE100’을 달성하려면 현행 전기료 수준에서도 2조원 이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SK하이닉스는 이런 전기료 부담이 천문학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RE100은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자는 국제 캠페인을 말한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