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잊혀진 재난 속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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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한국월드비전 회장 myunghwan_cho@worldvision.or.kr지난 한 주간 루마니아를 방문해 우크라이나에서 국경을 넘어온 피란민과 아동들을 만났다.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시작된 분쟁으로 피란길에 올라 국경을 넘어 난민 센터를 찾은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전 세계의 관심과 루마니아인들의 보살핌으로 난민 센터가 원활하게 운영돼 안전한 피란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난민들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지난 11년 동안 천천히 우리 시선에서 사라진 전쟁도 있다. 바로 2011년 봄에 시작된 시리아 전쟁이다. 시리아 난민은 680만 명으로 전 세계 난민 중 가장 많다. 인도적 지원이 절실한 인구는 시리아 전체의 67%에 이른다.특히 월드비전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시리아 과부캠프 여성과 아동: 희망 없이 버려진 이들’을 통해 소개된 ‘과부캠프’의 여성과 아동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 과부캠프는 일반 난민캠프와 분리돼 운영되는 곳으로 남편의 사망, 실종 혹은 이혼으로 홀로 살아가는 여성 수만 명과 그 자녀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방임, 언어적·신체적·성적 학대, 조혼, 아동 노동과 같은 극심한 폭력에 노출돼 있다. 또 일반 캠프와 달리 이동 제한이 있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거나 삶에 필수적인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한다. 이곳의 여성 95%가 절망감을 느낀다고 답했지만 심리사회적 지원은 전무하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잊혀진 재난은 시리아 전쟁 말고도 또 있다. 지난해 발생한 미얀마 위기는 아동과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갔고 월드비전은 인도적 지원과 보호를 위해 평화적 해결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지만, 아직도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의 사실상 지도부인 탈레반은 여성 청소년에게 중등교육을 허용하겠다는 기존 약속을 번복하고 전국의 모든 여학생이 중등교육을 받을 수 없게 했다. 월드비전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성별과 관계없이 학교에 갈 수 있는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도록 아프가니스탄 지도부에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또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촌의 상황은 어떠한가?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중단된 난민촌은 우리가 지난 2년 동안 겪어온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난민촌 내의 학교에 갈 수도 없이 갇힌 아이들은 폭력과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생명의 가치는 국적과 신분을 막론하고 모두 소중하지만, 국제사회의 관심과 자원의 불균형으로 전 세계 취약한 사람들의 삶의 질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긴급구호 활동의 목표는 가장 시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것에 있지만 재난 이전의 일상으로 회복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하지만 시리아 과부캠프의 아동과 여성들,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의 아이들은 가장 고립된 곳에서 천천히 잊히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의 시선을 거두지 말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