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에너지 공백 꿰찰 기회인데…미 업계 미적대는 까닭은

미 생산량 1∼2년간 제자리 전망…고유가 지속도 난망
증산 투자심리에 찬물…바이든 정부 기류도 변수
미국산 에너지가 유럽에서 러시아산을 대체할 후보로 거론되지만 정작 미 석유회사들은 증산을 망설인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미국의 석유 생산량 증가율이 지난해 12월 이후 2% 미만에 그치고 있으며, 최소 향후 1∼2년 내에도 확연히 증가할 것 같진 않다는 전망을 전했다.

미국 정부 추산치에 따르면 올해 미국 석유생산량은 하루 평균 1천200만배럴 수준에 달하고 내년에는 하루 100만배럴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유럽이 매일 러시아에서 석유 400만배럴 가량을 들여온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배경에서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추진하는 유럽이 러시아에서 수입을 중단하면 미국 에너지가 짧은 기간 내 이 공백을 채우기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날 유럽연합(EU)은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의존도를 3분의 2만큼 줄이고, 2027년 말까지는 수입을 전면 중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석유업계에서 석유 생산량을 늘리지 않는 이유는 고유가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NYT는 전했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시추 확대 등으로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석유 가격이 내려가면 회사로서는 막대한 손실을 볼 수 밖에 없다.

'퍼미언 분지 석유 협회'의 회장 벤 셰퍼드는 "코로나19 상황과 유가 급락 때문에 몸으로 배운 게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석유 업계나 투자업계에서는 대체로 유가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지난달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이 석유업체 141곳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60%가 증산하지 않는 이유로 투자자들이 이를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시나리오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패해 철수하거나, 중국에서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치로 에너지 수요가 감소한다는 상황 등이 거론된다.

또 인플레이션으로 인건비, 자재비 등 전반적인 비용이 오른 점도 투자 확대를 부담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대형 석유업체들의 활동 둔화가 눈에 띈다.

NYT는 대기업에 비해 사모펀드가 투자하는 중소 업체들의 활동이 더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댈러스 연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하루 1만배럴보다 적게 생산하는 회사들의 올해 성장률 중간값은 15%였지만 그보다 많이 생산하는 기업은 6%에 그쳤다.

대형 석유회사들은 그 이유로 투자심리가 악화됐다는 점을 들었다.

투자를 더 많이 하고 싶어도 월가에서 새로운 화석연료 계획에 지원하기를 망설인다거나 기후변화에 관심 있는 일부 투자자들은 재생에너지나 전기차 등으로 자금을 돌린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오른 에너지 가격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투자업계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을 기치로 내건 조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 석유업체들은 입지가 좁아졌고 규제를 강화하는 정부 눈치를 보게 됐다. 실제 미 정부는 석유 업계에 증산을 요구했지만 업계에서는 나중에 가격이 안정되면 다시 감산을 요구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고 NYT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