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세상이 만나는 장소"…인간의 상상력 담긴 색의 문화사

신간 '컬러의 시간'
은행과 보험사는 로고를 만들 때 정직과 성실·안정 같은 인상을 떠올리게 하는 파란색을 선호한다. 식욕을 돋우는 빨간색과 오렌지색은 식품과 음료에 흔히 쓰인다.

색마다 고유한 속성이나 의미가 있을까.

빨간색은 활기차고 갈색은 무기력하다는 인식은 색 자체의 정서적·심리적 특성이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빨강은 보수, 파랑은 진보라는 미국 정치의 공식이 유럽에서는 반대로 적용되는 걸 보면 사회적 관습이나 상상력에 의한 연상작용이 색에 부여하는 의미도 만만찮다.

과학적으로 색은 사물 자체, 혹은 사물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빛의 객관적 속성이다.

색은 물리적 세상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이나 정신에만 존재한다는 철학적 견해가 반대편에 있다. 영국 미술사학자 제임스 폭스는 두 입장을 모두 지지한다.

색은 객관적이자 주관적이다.

화가 폴 세잔의 말대로 색은 '우리 뇌와 세상이 만나는 장소'라고 그는 말한다. 최근 번역·출간된 제임스 폭스의 '컬러의 시간'은 각각의 색이 가진 느낌과 의미를 과학적·역사적으로 풀어내는 책이다.

저자는 색의 의미에 세 종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색채와 색조가 지닌 정서적 의의에서 나온다.

두 번째는 빨강이 경고의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체계화된 사회적 관습에서 비롯한다.
마지막 연상작용에 의한 의미가 역사적으로 가장 풍요롭다.

인류는 행성과 요일, 계절과 기후, 원소와 금속 같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주변 사물과 환경을 색과 연관 짓는 의미체계를 창조했다.

여기서 색의 의미는 때때로 비논리적이며,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의 색이 여러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그나마 일관된 의미를 지녔다고 인식되는 검정도 다르지 않다.

인류 역사 내내 암흑과 절망, 죄와 죽음을 상징했다가 최근 들어 최신 스타일의 동의어가 됐다.

패션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검정색을 두고 "모든 색 중 가장 인기 있고 가장 편리하며 가장 우아하다"고 했다.

저자는 색이 "주체와 객체, 정신과 물질 사이의 춤"이며 "색의 성분은 우리 밖에 있지만, 조리법은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한다.

조리법이 늘 같지는 않듯, 색에 대한 인식은 사람과 문화에 따라 다르다.

"색은 우리 상상력의 안료이며, 우리는 그 안료로 세상을 칠한다.

그 어떤 도시보다 크고, 그 어떤 기계보다 정교하며,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운 색은 사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인지 모른다. "
윌북. 강경이 옮김. 468쪽. 1만8천8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