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에너지 위기 온다"…천연가스 이어 석탄 값 '고공행진'

우크라이나 사태 후 에너지 위기 고조
저렴한 석탄에 수요 몰리며 가격 상승
"개도국 에너지 부족 피해 커질 듯"

세계가 '석탄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석탄으로 수요가 옮겨붙은 것이다. 러시아산 에너지에서 손을 떼기로 한 유럽을 중심으로 석탄 수요가 늘고 있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천연가스에 따른 에너지 대란이 석탄발(發) 2차 에너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6일(현지시간) 호주 뉴캐슬 발전용 석탄 가격은 t당 325달러로 이달 들어 25.6% 상승했다. 지난달 2일엔 2008년 이후 최고치인 446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가격은 안정되는 듯 했지만 이달 초부터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석탄 가격도 이달 초 13년 만에 최고가를 찍었다.우크라이나 사태가 석탄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지만 상승 곡선의 출발점은 지난해였다. 세계 각국의 코로나19 규제 완화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천연가스가 부족해지면서 또 다른 화석연료인 석탄 가격이 덩달아 뛰었다. 이에 더해 지난 2월 24일 천연가스 주요 생산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천연가스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가격 경쟁력이 있는 석탄이 발전용 연료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도미노 효과로 석탄 가격이 기록적 수준으로 높아졌다"며 "퇴출될 것으로 전망됐던 석탄에 대한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석탄 수요는 당분간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석탄을 통한 전력 생산량은 전년 대비 9% 증가했다. 올해 전세계 석탄 소비량은 80억2200만톤으로 1년 전 보다 2%가량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다. 2024년 석탄 소비량은 80억3100만톤으로 예상된다.

석탄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탈탄소 행보에 가장 적극적인 유럽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겨울철 에너지 확보를 위해 폐쇄된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경제 제재의 일환으로 오는 8월부터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선 다른 국가로부터 석탄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유럽연합(EU)은 석탄 수입의 약 4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공급은 빠듯한 상황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석탄 공급량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석탄 채굴이 인력난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언젠가는 석탄이 퇴출될 것이란 전망도 채굴 속도를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발전용 석탄 최대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는 자국 물량 확보를 위해 올초 석탄 수출을 중단했다. 주요 석탄 수출국인 호주도 수출 확대 여력이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해 단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석탄 생산을 늘린다고 했지만 지속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석탄 공급 부족에 따른 에너지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에너지 대란으로 개발도상국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은 가격 상승세와 상관없이 석탄을 수입할 수 있지만 개도국은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와 같이 현금이 부족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충격에 노출돼 있다"며 "이들 국가는 이미 에너지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석탄의 부활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지구적 노력이 퇴색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IEA는 "2024년 석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50년까지 0에 도달한다는 시나리오상 계획 보다 최소 30억톤 더 많을 것"이라며 "정치적 야망과 에너지 시스템의 현실 사이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