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는 '골반' 상의는 '짧게' 액세서리는 '번쩍'…세기말 패션의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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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만에 부활한 Y2K패션패션은 돌고 돈다. 누군가에겐 ‘흑역사’가 다른 누군가에겐 ‘워너비’가 될 수 있다는 게 패션계의 정설. 올 봄·여름 시즌이 이를 증명한다. 골반이 드러날 정도로 내려 입은 치마와 바지, 배꼽이 드러나는 짧은 티셔츠, 과하게 반짝이는 액세서리…. 20여 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Y2K패션’이 부활했다. 컴퓨터가 1900년과 2000년을 모두 ‘00’으로 인식해 오류가 날 것이라는 괴담이 돌았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그 당시 유행했던 세기말 감성의 패션이다. 이 스타일을 소화했던 30~40대 밀레니얼 세대는 ‘촌스럽다’며 강하게 거부하지만 10~20대 Z세대는 열광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30~40대가 입던 브랜드를 최근 10~20대가 다시 입는 셈”이라며 “4050세대가 1970년대의 레트로 감성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미우미우'
배꼽티·스커트 재해석
골반까지 내려 입는
로라이즈 팬츠
제니·노제·장원영 등
유행 주도하며 '완판'
삼성물산 '구호플러스'
믹스 앤드 매치 선보여
미우미우도 샤넬도…골반바지에 크롭티
Y2K패션을 메이저로 끌어올린 건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다. 작년 10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2000년대풍의 ‘이상한 옷’을 내놨다. 미니스커트를 골반에 걸쳐 내려 입고, 상의는 과감하게 잘라낸 크롭티(배꼽티)를 선보였다. 스커트는 주머니가 치마 아래로 삐져나올 정도로 짧았다. 미우미우의 쇼 이후 이런 스타일이 패션업계에 번지면서 Y2K패션은 일명 ‘미우미우 세트’로도 불린다.Y2K패션은 몸매가 드러나는 크롭티에 골반에 걸칠 듯 입는 로라이즈 팬츠, 미니스커트 등이 대표 아이템이다.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에이브릴 라빈 등이 Y2K패션으로 대표되는 팝스타였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샤넬은 가수 박지윤이 2000년 발표한 곡 ‘성인식’ 무대에서 입었던 골반 치마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허리에 두르는 액세서리 ‘벨리 체인’ 등 과감한 액세서리도 등장했다.유행에 민감한 인플루언서와 연예인들은 로라이즈 팬츠를 입은 사진을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쉴 새 없이 올리고 있다. 블랙핑크의 제니부터 스우파(스트리트우먼파이터)에 출연해 인기를 끌고 있는 노제,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 등이 모두 속옷이 보이는 로라이즈 팬츠를 입고 ‘인증샷’을 올려 눈길을 사로잡았다. 소녀시대 윤아는 데님셔츠를 로라이즈 미니스커트에 받쳐 입었다. 발랄한 느낌을 강조해 봄에 따라 입기 좋은 ‘캠퍼스 룩’이다.
미우미우의 앰배서더인 장원영은 브랜드 로고가 적힌 속옷을 노출한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작년 10월 파리 패션위크에 등장한 미우미우의 로라이즈 미니스커트는 이미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품절돼 구매할 수 없을 정도다. 판매가격 995달러(약 125만원)인 이 상품은 글로벌 오픈마켓인 이베이에서 1200달러(약 151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2000년대 ‘대학생 룩’에 초미니스커트
Z세대들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미우미우 세트처럼 입기’ 영상을 2억 건가량 업로드하며 유행을 이끌고 있다. 인플루언서들도 자신이 가진 셔츠 밑단을 잘라 ‘크롭 기장의 셔츠 만드는 법’을 공유 중이다. 미국과 중국에서 인기 있는 패션 플랫폼 ‘쉬인’에는 미우미우 스타일의 옷이 하루에도 8000개 이상 올라오고 있다.국내 패션계의 시계도 2000년과 2022년을 가로지르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구호플러스는 이번 봄·여름 시즌에 1990년대 후반 자유로운 사고방식에서 영향받은 ‘믹스 앤드 매치 룩’ 컬렉션을 출시했다. 가죽 재킷과 청재킷, 미니스커트 등을 재해석해 다시 내놓은 것이다. 미우미우처럼 주머니를 밖으로 크게 빼는 방식의 ‘아웃포켓 페이크 레더 재킷’은 품절되기도 했다. 에잇세컨즈는 짧은 기장의 반팔 카디건과 통 넓은 데님 팬츠, 크롭 반팔 카디건과 데님 반바지를 조합한 스타일링을 새로 선보였다.지난 시즌 조거팬츠와 후드 티셔츠를 ‘명품룩’으로 완성시켜 인기를 끌었던 셀린느도 이번 시즌 초미니 드레스를 런웨이로 복귀시켰다. 오버사이즈 핏의 후드 티셔츠와 하의를 입지 않은 듯한 블랙 가죽 초미니 드레스를 매치하는 등 다양하게 변주했다.
패션업계에서는 Y2K패션 유행이 올 가을·겨울에 더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로라이즈 팬츠 등을 대거 준비하고 있다”며 “올가을쯤에는 극단적인 Y2K패션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