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척박한 지금 이곳에서도, 밀레[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이삭 줍는 여인들, 1857, 오르세 미술관
목가적이고 평온한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이삭을 줍는 세 여인의 모습을 담은 <이삭 줍는 여인들>이란 작품입니다. 프랑스 출신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그림이죠.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 중 이보다 더 유명한 그림이 있을까요.

그런데 첫인상과 달리 그림 속엔 서글픈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여인들의 얼굴은 머릿수건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데요. 왠지 얼굴이 어둡고, 온몸이 지쳐 보입니다. 허리를 잔뜩 굽히고 있어 더 그렇게 보이기도 하죠. 이들의 이삭 줍기는 가난과 고통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을 만큼 가난해서, 추수가 다 끝난 다른 사람의 밭에서 남은 이삭을 줍고 있는 겁니다. 당시 농촌엔 이삭을 주워서라도 버텨야 할 정도로 궁핍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밀레는 빈곤한 농민들의 고된 삶과 소박한 일상을 평생 동안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그 숭고함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가 됐습니다.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이란 작품도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보고 자신만의 화풍으로 재해석해 그린 건데요. 밀레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존경의 의미를 담아 따라 그린 겁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
밀레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림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왔죠.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그림 공부도 중단하고 농사를 지었죠.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할머니가 그에게 다시 미술 공부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의 응원 덕분에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지만, 그는 머지않아 학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후엔 초상화와 풍속화를 그리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27살에 이르러 결혼을 했지만, 극심한 가난으로 3년 만에 아내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카페에서 일하던 카트린 르메르 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가족들은 르메르의 신분이 낮다며 반대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가족과 인연을 끊고 평생을 함께 살았습니다.

밀레는 르메르와 1849년 바르비종 이라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바르비종은 파리 근처 퐁텐블로 숲가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이곳엔 주로 자연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밀레도 바르비종에 안착해 농사를 짓고 그림도 그렸죠.
씨 뿌리는 사람, 1850, 보스턴 미술관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눈으로 본 농촌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1850), ‘이삭 줍는 여인들’(1857), ‘만종’(1859) 등이 모두 여기서 탄생했죠.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당시 농촌을 배경으로 한 그림 대부분은 풍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반면 밀레의 작품엔 풍경보다, 고된 노동과 끝없는 가난으로 힘겨워 하는 농민들이 등장했습니다. 부르주아들은 밀레의 작품들로 인해 농민들의 마음이 동요할까 걱정하며 신랄한 혹평을 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밀레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본 것을 솔직하게, 되도록 능숙하게 표현하려 할 뿐이다."

밀레의 작품 중엔 '이삭 줍는 여인들' 못지않게 '만종'이란 그림이 유명한데요. 이 작품은 해 질 무렵 한 농부 부부가 저녁 기도 종소리를 듣고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겁니다. 박수근 화백이 어린 시절 이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얘기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만종, 1857~1859, 오르세 미술관
'만종'을 두고 한때 충격적인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만종' 그림의 가운데에 놓인 바구니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달리는 그 속에 있는 것이 감자가 아니라,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으로 잃은 아기가 든 관이라고 주장했는데요. X선 촬영을 한 결과, 관 모양의 형태를 그려 넣은 흔적이 실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밀레가 정말 관을 그리려 했던 건지 아닌지, 진실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밀레는 50대가 돼서야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50살이 되던 해 파리 만국박람회에 '이삭 줍는 여인들'과 '만종' 등이 출품되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죠. 2년 후엔 레종 도뇌르 훈장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후엔 활발히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고생을 하고 가난에 시달렸던 탓에 건강이 크게 악화됐고, 61살에 세상을 떠났죠.

매일 이른 새벽 일어나 메마른 땅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소중히 가꾸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마음도 농부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밀레에게도 현실은 지독히 척박한 땅 그 자체였습니다. 그럼에도 풍작을 기원하는 농부처럼 그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느냐는 중요치 않다. 어디에 있든 목표에 닿을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