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단기주의가 환경문제의 주범일까

환경·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주주 단기주의가 지목되고 있다. 경영진을 단기 실적의 압박에서 해방시키고, 헤지펀드 규제를 강화하자는 의견이나 충성주식의 논의는 단기적 시야에 장기적인 안목을 더하자는 것이다. ESG 목표의 추구를 위해서는 결국 장기주의와 단기주의가 조화되어야 한다
[한경ESG] ESG와 법 ⑧
게티이미지뱅크
기후변화, 각종 불평등 같은 환경·사회문제의 원인을 주주 단기주의(short-termism)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주주들이 회사의 분기별 매출이나 영업이익 같은 단기 실적을 중시하는 이상 경영진이 온실가스 저감이나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 친환경적 생산과정으로의 전환 등에 노력을 기울이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논의는 기업과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하고, 투자자들이 장기적 시각으로 회사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주주 단기주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이사 의무에 지속 가능성 고려 포함

대표적으로 EU 집행위원회가 2020년 7월에 공개한 ‘이사의 의무 및 지속 가능한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회사의 의사결정권자들이 단기적 주주가치를 회사의 장기적 이익에 우선하고, 그 결과 기업활동의 경제·환경·사회적 지속 가능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보고서는 단기주의의 원인으로 다음과 같은 7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① 이사의 의무나 회사 이익이 지나치게 좁게 해석되고, 단기적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장려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②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s) 등 단기적 성향의 투자자 압력이 증가함에 따라 이사회가 장기적 가치 추구보다 주주에 대한 단기적 재무 수익에 치중하게 된다는 점, ③ 회사들이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전략적 시각이 부족하고 현재의 실무가 지속 가능성 관련 리스크나 영향을 효과적으로 발견하고 관리하지 못한다는 점, ④ 이사의 보수 체계가 회사의 단기적 주주가치를 추구할 유인을 제공한다는 점, ⑤ 이사회 구성이 지속 가능성으로 전환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 ⑥ 기업 지배구조와 실무가 이해관계자의 장기적 이익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 ⑦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추구할 이사의 의무를 강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주주 단기주의와 이사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문제 원인으로 진단하면, 이에 대한 처방은 단기적 주주의 영향력 행사를 억제하고 ESG 문제에 대한 이사의 재량을 늘리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2020년 보고서를 바탕으로 EU 집행위가 지난 2월 23일에 발표한 EU의 회사 지속 가능성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초안은 회사 이사들에게 그들의 결정이 인권, 기후변화, 환경문제를 포함한 지속 가능 사안에 미치는 결과를 고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초안이 유럽 의회와 EU 이사회 승인을 받아 발효되면 EU 회원국은 이에 부합하도록 자국법을 개정해야 한다.

2019년 제정된 프랑스의 팍트법(Loi Pacte)은 이사회가 회사 이익에 부합하도록 의사결정을 하고 이 과정에서 회사활동의 사회적·환경적 영향 등을 고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사가 주주 이익 외에 ESG 요소나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는지가 이사의 신인의무(fiduciary duty)상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법 개정을 통해 이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신민석 KCGI 부대표가 한진칼 주주총회에 참석해 재무제표 승인 안건과 관련해 회사 측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일본, 분기 결산제도 폐지 추진주주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는 주장도 등장한다. 헤지펀드들은 비핵심 자산의 매각, 연구개발 및 자본적 지출(CAPEX)의 축소를 통해 이익배당이나 자기주식 취득 실행을 경영진에 요구하곤 한다. 이러한 요구는 대표적 단기주의적 행동에 해당하므로, 경영진이 헤지펀드의 공격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대량 보유 보고(이른바 5% 보고)의 보고 기준을 낮추고 신용 파생상품(TRS) 등 이른바 현금 결제형 파생상품(cash-settled derivative)의 공시를 강화하자는 제안이 각국에서 등장하고 있다.

경영진을 단기 실적의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자는 주장도 유력하다. 기업의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주가가 출렁이고 경영진의 지위가 영향을 받는 현상이 반복된 지 오래다. 경영진이 분기 실적에 민감해질수록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를 실행하거나 ESG를 추구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 이른바 분기 자본주의(quarterly capitalism)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회사의 분기보고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일본의 기시다 총리는 일본 기업의 장기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분기결산제도 폐지를 제안했고,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도 비록 입법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재임 시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분기 실적 보고 폐지의 연구를 지시한 바 있다.

주식을 일정 기간 보유한 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이른바 충성주식(loyalty share)의 도입도 검토되고 있다. 주식을 장기간 보유한 주주가 단기간 보유한 주주보다 회사의 장기 성과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입법의 근거다. 실제 프랑스는 플로랑주법(Loi Florange)을 통해 정관의 배제 규정이 없는 한 2년 이상 상장회사 주식을 보유한 주주의 의결권이 2배가 되도록 하고 있다.주주 영향력 제한 신중해야

그런데 주주의 단기주의가 기업이 야기하는 환경·사회문제의 원인일까? 경영진이 주주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과연 장기적 시각을 갖고 ESG 요소를 고려할까? 경영진의 판단 아래 실행하는 장기적 투자나 연구개발은 대부분 성공적일까? 회사가 장기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회사의 잉여금을 주주에게 분배하는 것보다 회사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도움이 될까?

주주행동주의 펀드의 압박은 경영진이 장기적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지만, 경영진이나 지배주주의 지나친 낙관주의를 견제하고 사익 추구를 방지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컬럼비아대 에릭 탈리 교수는 실적 부진으로 해임된 CEO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면 성공했을 것이라고 한다면서 장기주의의 폐해 역시 단기주의의 폐해 못지않다고 본다.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 연구로 유명한 마이클 젠슨 교수는 1986년 논문을 통해 회사에 잉여 현금흐름(free cash-flow)이 있는 경우 경영진이 이를 주주에게 배당하기보다 수익성이 낮은 기업 인수합병(M&A) 등에 투자할 유인이 있음을 지적했다. 단기주의를 환경·사회문제의 원인으로 본 2020년 EU 보고서는 주주 단기주의를 판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며 학계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대부분의 회사에 지배주주가 있는 데다 소액주주 보호가 여전히 자본시장의 중요한 과제인 우리나라에서 주주의 영향력 행사를 제한하고 지배주주가 선임하는 경영진의 재량을 넓히는 정책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ESG 논의가 각광받을수록 기업 경영에 대한 장기적 시각과 단기적 시각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