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잃은 딸이 묻는다···"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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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혜순, 3년 만에 새 시집 출간봄날, 손을 잡고 단란하게 지나가는 어느 가족을 보며 시인은 생각한다. '저기 작별의 공동체가 걸어가는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언젠가는 죽어 떠나고 떠나보내야 한다는 게 인간의 비극이다. 가족뿐일까. 도처에 죽음이 있다. 코로나19, 전쟁, 독재···.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의 죽음을 앓은 시인 김혜순은 '전 지구적 비탄'을 담아 3년 만에 새 시집을 냈다.
28일 김혜순 시인은 "엄마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비탄의 연대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교동 문학과지성사에서 열린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다. 그는 "코로나19로 누워있으며 '이렇게 지구를 두면 큰일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여파는 우리에게로까지 파도 쳐온다"고 했다.김혜순 시인은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당신의 첫> <죽음의 자서전> 등을 내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번 책은 그의 열네번째 시집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독자들도 그의 시를 찾아 읽는다. 국내에서는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상문학상 등을, 해외에서는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국제부문, 스웨덴 시카다상 등을 수상했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문학평론가)는 "최근 김혜순 시인의 시 '고잉 고잉 곤'이 뉴욕타임즈에 소개됐다"며 "세계 독자와 함께 읽는, 동시대성을 획득한 시인이라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는 총 3부로 구성돼있다.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죽음이다. 1부는 시인의 엄마가 아플 때와 세상을 떠난 후 써내려간 시를 담았다.흐르는 시간과 다가오는 죽음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나는 눈을 가린사람처럼 두 손을 휘젓”지만 “봄이 엄마를 데리고 간다”('저 봄 잡아라').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세계를 멸망시킨다. 시인은 빈 집을 둘러보다 말한다. “이제 저 부엌은 끝났다”('엄마 on 엄마 off')
2부는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재난을 맞이한 시대적 절망, 3부는 산산이 부서진 ‘모래’, 그리고 '사막'에 주목한다. 엄마를 잃은 슬픔에 시인은 자주 쓰러졌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 사이 코로나19도 시인의 몸을 휩쓸고 갔다. "내가 홀로 겪는 육체적 고통과 증상은 식구조차 짐작할 수 없어요. 소통할 수 없는, 산산이 부서진 고통의 자리에 가보겠다고 시를 썼어요. 엄마와 제가 보낸 시간과 나날이 산산이 조각나있는 그곳, 사막에서 어떤 시적인 생성(生成)을 해보려고 했어요."
그가 40년간 시를 써오면서 '엄마'로 시를 쓴 건 처음이다. 김 시인은 "엄마는 나의 과거였는데 돌아가심으로써 나의 미래가 됐다"며 "나에게 삶을 준 줄만 알았더니 죽음도 줬다"고 했다.시인은 섣불리 위로나 치유를 말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것보다 (절망을 그 자체로) 비탄하는 게 시인의 역할이지 않을까요." 그가 생각하는 시는 "불행을 더 불행답게, 파괴를 더 파괴답게 하는 장르"다. '무엇에 관해서 쓰는 일'이 아니라 '무엇이 되기'다. "앞으로 무엇을 더 쓰겠다고 하는 계획은 없어요. 늘 닥쳐오면 쓰고, 안 쓸 때도 있어요. 죽음과 관련된 시를 계속해서 쓰느라고 많이 힘들었어요. 요새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바라보고 있어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