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파업이냐"…현대重 MZ세대 직원들 뿔났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27일 울산 본사에서 파업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노조의 정치파업 때문에 열심히 산 사무직원들이 왜 피해를 봐야 하나”. “고과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은 돈을 받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현대중공업그룹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직원들이 29일 직장인 익명게시판에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파업을 비판하며 잇따라 올린 글들이다. 그룹의 조선 자회사인 현대중공업 노조는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난항을 이유로 지난 27일부터 사흘째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MZ세대 직원들의 반응은 차갑다. 파업으로 생산 차질을 빚게 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들이 부담하게 된다는 판단에서다. 40~50대 기성세대로 구성된 노조가 기본급 인상과 정년 연장 등을 요구하는 반면 MZ세대는 철저한 성과주의를 내세우며 회사가 공정하게 실적에 따라 몫을 분배해야 한다고 보는 것도 ‘노노 갈등’의 또 다른 단면이다.

○500명이 점거한 공장 도로

2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지난 27일 오전 9시부터 7시간 파업을 벌인 데 이어 다음날인 지난 28일부터 8시간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내달 4일까지 전면파업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전면파업이다. 현대중공업지부는 현대중공업·현대일렉트릭·현대건설기계 교섭권을 행사하는 3사 단일노조다.

노사는 지난해 매듭짓지 못한 임금협상을 해를 넘겨 진행하고 있다. 노사는 지난달 15일 기본급 7만3000원 인상, 성과금 148%, 격려금 250만원, 복지포인트 30만원 지급, 해고자 복직 등을 담은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66.8% 반대로 부결됐다.현대중공업을 비롯한 3사의 조합원 8000여명 중 전면파업 현장에 나온 조합원은 500여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울산 조선소의 핵심시설인 1·2도크 사이 도로를 점거해 철강 등 선박자재 물류를 방해하고, 작업에 차질을 빚게 하는 등 고강도 투쟁에 나서고 있다.

노조는 8일간의 파업에도 교섭에 진전이 없으면 추가 파업에 나설 수 있다는 방침이다. 파업이 장기국면에 접어들면 막대한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작년 7월에도 울산 본사 크레인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면서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노조는 새 합의안 도출을 위해 재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동종업계에서 최고 수준을 제시했기 때문에 재교섭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사측도 이날 한 발 물러나 “현대일렉트릭과 현대건설기계를 교섭에서 분리해 ‘3사 1노조’ 시스템을 개선하면 당장이라도 교섭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3사 1노조’란 현대중공업이 2017년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등으로 인적분할됐지만, 노조는 기존처럼 1개 조직을 유지한 것을 뜻한다.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조합원들도 모두 현대중공업 노조에 묶여 있으며, 임단협도 3사 모두의 조합원 투표를 통과해야 마무리된다.

해마다 현대일렉트릭이나 현대건설기계는 잠정합의안을 먼저 통과해놓고도 현대중공업에서 부결되면 타결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사측은 “경영환경이 다른 세 회사를 하나로 묶다 보니 각사 조합원들이 비교심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 이어져 왔다”며 “미래를 위한 변화에 노조도 동참해 달라”고 밝혔다.

○연봉제 도입 요구하는 MZ세대

전체 조합원 8000여명 중 MZ세대 직원은 2900여명으로, 36%에 달한다. 하지만 파업 현장에 나온 MZ세대 직원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에도 MZ세대 직원들의 파업 참가율은 극히 저조했다. 조합원 70% 가량이 반대표를 던진 임단협 투표결과와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받을 것은 더 받겠다’면서도 파업에 따른 손실이 돌아오는 것은 꺼려하는 MZ세대들의 이중적인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노조가 실리 중심의 MZ세대 성향을 무시하고 파업을 계속 강행하면 반발만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 집행부를 중심으로 한 기성세대와 사무직 중심의 MZ세대 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 노조가 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면서 MZ세대 직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현대제뉴인, 현대건설기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등 현대중공업그룹 건설기계 3사는 이달 1일부터 임금체계와 복지를 통일하는 신(新)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신연봉제는 48시간 고정연장을 포함하는 임금체계로, 현대건설기계 선임(대리)급 이하 직원들은 직급에 따라 최소 500만원에서 1000만원 이상 연봉이 오른다. 새 연봉제 실시를 위해선 3사 1노조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구조에서 현대중공업 노조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노조가 반대하면서 현대건설기계는 신연봉제 도입이 무산된 채 기존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200명 가량의 현대건설기계 선임 이하 직원들이 다른 건설기계 계열사에 비해 최대 1000만원의 연봉을 덜 받는다는 뜻이다.

특히 노조가 “고과에 따라 차등받는 연봉제는 좋은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이 젊은 직원들을 자극했다. MZ세대 사무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직장인 게시판 등을 통해 연봉제 도입을 요구하며 노조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한 MZ세대 직원은 “노조를 구성하는 연령층이 40~50대이기 때문에 젊은 직원들과 생각에 차이가 있다”며 “정치노조가 앞장서 MZ세대의 미래 임금까지 포기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