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생일때 더 관대해지는 판사, 오류는 왜 생기나

노이즈

대니얼 카너먼 외 지음
장진영 옮김
김영사
616쪽│2만5000원

'노벨상' 대니얼 카너먼, 10년 만에 신간
전문적 판단하는 이들도 오류 빚어
옳은 판단 위해선 '잡음'부터 인정해야
‘워터게이트’ 담당 판사 존 시리카
1970년대 미국을 뒤흔든 ‘워터게이트’ 사건 담당 판사 존 시리카의 별명은 ‘맥시멈 존’이었다. 피고에게 가장 엄한 최고 형량을 내리기로 이름나서다. 그는 사법 질서의 수호자였을까. 순전히 운이 나빠 다른 판사가 아닌 그의 앞에 서게 된 피고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피고의 운명이 판사의 소신과 냉철한 근거에 따라 결정된다면 차라리 납득할 수 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30년에 걸친 미국 사법 결정 150만 건을 분석한 결과 판사들은 자신의 지역 미식축구팀이 경기에서 패배한 다음날이면 승리한 경우보다 더 가혹한 판결을 내렸다. 프랑스 판사들이 12년간 내린 600만 건의 판결을 살펴보니 피고들은 자기 생일에 더 관대한 판결을 ‘선물’받았다.

《노이즈》는 이처럼 판단 과정에서 끼어드는 사람의 오류, 즉 ‘잡음’을 탐구한다. 원치 않는 변산성(한 분포에 위치하는 여러 점수가 집중 경향에서 퍼져 있는 성질)이라고도 표현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가 《생각에 관한 생각(원제 Thinking, Fast and Slow)》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책이다. 카너먼 교수는 심리학과 경제학을 융합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통한다. 인간은 이익보다 손실에 민감하다는 ‘전망이론’으로 유명하다. 공저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프랑스 최고 경영대학원 HEC파리 교수이자 옥스퍼드 경영대학원 수석연구원인 올리비에 시보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고문을 지낸 하버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캐스 선스타인이 머리를 맞댔다.

일관성 없는 제도는 신뢰를 잃어버린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든다. 책은 과학수사, 기업의 인사 결정, 의학적 판단 등에서 일치된 의견을 내놓으리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결국 문제의 핵심을 놓고 서로 너무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예컨대 같은 지원자 두 명과 면담한 면접관 두 명에게 어느 지원자가 업무 능력이 우수한지 물어보면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25%에 달한다.잡음은 편향과는 다르다. 더 고약하다. 특정 인종, 성별 등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은 일정한 방향성을 보인다. 예측 가능하고, 쉽지는 않지만 그 의도나 인물을 바로잡는 방식으로 오류를 제거할 수 있다. 잡음은 판단을 내린 당사자조차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점에서 더 까다롭다. 괜히 책의 부제가 ‘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인 게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슬그머니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든다. ‘애초에 판단이 필요한 영역은 정답이 없는 일들이고, 일정 수준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의사, 판사, 보험심사역, 수사관 등 전문적인 판단을 내리는 게 업인 사람들조차 오류를 빚는다는 말은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판단이 있는 곳에 잡음이 있고, 그 잡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옳은 판단을 위해서는 잡음의 존재부터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잡음을 최소화하려다 다양성을 억누르거나 규칙 지상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도식에 따른 판단이 늘 옳다면 인간의 사유는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말이다. 책은 잡음이란 “의견 또는 취향의 문제와는 다르다”고 답한다. 일관성이 필요한 각종 제도의 판단 과정이 들쭉날쭉할 때, 이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렇다면 중요한 판단을 할 때 잡음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적인 견제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게 책의 조언이다. 일명 ‘잡음 감사’다. 여러 전문가가 특정 사례에 대해 독립적인 판단을 하면서 해당 결정이 옳은지, 잡음의 정도는 어떤지를 살펴본다. 이 밖에 통계와 알고리즘을 활용하고 섣부른 직관에 의한 판단을 막는 방법 등을 제시한다.

저자들이 새로 제시한 각종 개념과 용어 탓에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로버트 서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실은 이 책 서평을 통해 “글 스타일이 자주 변해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어떤 부분은 심리학이나 통계학 교과서처럼 읽히고, 또 어떤 부분은 학술적인 기사 또는 잡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떠올리게 했다”고 평한다. 그러나 그는 “이건 사소한 불평”이라며 “모든 학자, 정책 입안자, 지도자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에서 얻은 통찰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힘과 끈기를 가진 사람들은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결정을 내리고, 생명을 구하고, 시간과 돈과 재능이 낭비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