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류로 문화강국 만드는 게 이 시대의 호국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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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인터뷰“나는 부딪히는 걸 피합니다. 어떻게 보면 좀 비겁하다고 할 정도로 안 부딪힙니다. 왜냐, 그렇게 충돌하면서까지 할 게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좀 비겁해 보이면 되지요. 부딪히고 싸우고 이기려고 하는 게 힘들지, 참는 건 힘들지 않습니다. 하하.”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
서예·도자기·한지에 옻칠까지…
참선 넘어 전통 예술에도 매진
정치권 극한 대립, 넓게 봐야 풀려
역대 대통령 감옥行, 창피한 일
모두 사면하고 재발 없게 해야
'나부터 잘하자'가 신조
자연스레 보고 배우게 될 것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83)의 안심(安心) 법문이다. 평생 살면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한마디가 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부처님 오신날(8일)을 앞두고 지난달 29일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의 산중 작업실에서 성파 스님을 만났다. 종정 취임 후 근황부터 물었다.“찾아오는 분들은 좀 늘었습니다만, 지내는 건 종정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나 안 붙었을 때나 같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예불하고 공양하고 사중(寺中)의 대중 스님들도 만나고, 주지 스님한테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지요. 일정이 없으면 작업실에 올라옵니다. 종단의 공식 일정 외에는 종정이라는 고삐나 굴레가 싫습니다. 평소 하던 대로 살 뿐입니다.”
성파 스님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해인사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5학년 때 6·25전쟁이 터졌다.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게 되자 서당에서 명심보감과 사서삼경 등 한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마음의 실체가 궁금해 1960년 통도사로 출가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월하 스님(1915~2003)이 은사다. 평상심이 도(道)라고 강조한 월하 스님의 영향일까. 성파 스님 또한 일상이 수행인 삶을 지속해왔다.
“은사 스님은 이렇다 저렇다 (콕 집어서) 말씀을 안 하시는 분이라 특별히 뭘 정해서 교육하지는 않으셨어요. 은사 스님의 평소 말씀과 행동이 그대로 내 몸에 밴 것이죠.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은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아서 소나기 맞은 것처럼 옷이 금세 젖지는 않더라도 때때로 꿉꿉해진다’(명심보감)는 말처럼 말입니다.”월하 스님은 ‘중노릇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했는데 성파 스님은 뭘 강조할까. 스님은 “남들한테 이래라저래라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부터 잘하면 된다”는 게 스님의 신조다. 그러면 남들이 보고 따라 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종정으로서 세운 목표나 계획이 있을까.
“어떤 종정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없습니다. 다만 역사 속에서 지금이 어떤 시점인지는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요. 1960년대 종정과 2022년의 종정은 다르거든요. 옛날 일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됩니다. 봄인데 가을 일을 하고, 여름인데 겨울 일을 해서 되겠습니까. 역사와 시대의식에 깨어 있지 않으면 살아있어도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어요.”
이 대목에서 성파 스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성파 스님은 수행자인 동시에 예술가다. 서예는 물론 그림, 옻칠, 도자기, 염색, 한지 제작 등 다방면에서 예술활동을 펼치며 전통문화 계승, 발전에 앞장서 왔다. 옻칠민화라는 새 영역도 개척했다. 가히 선예(禪藝) 일치의 경지다. 스님은 “수행자에겐 그림을 그리든, 밭을 매든 그 모든 게 수행”이라고 했다.“우리 승려들은 전통문화의 보고에서 태어나 살고 있습니다. 삶 자체가 전통문화입니다. 지금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지키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겁니다. 그게 이 시대의 호국불교입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통도사를 방문했을 때도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이 돼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현대 한류 외에 전통 한류로 세계적인 문화강국이 될 수 있다고 했더니 윤 당선인이 아주 긍정하더군요.”
대선 후 정치권의 극한 대립을 해소할 지혜를 구했더니 “역대 대통령들이 대부분 감옥에 가서 정말 창피하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지금까지 처벌한 건 다 사면하고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들도 너무 싸우는데 어느 나라 역사를 봐도 자중지란 때문에 망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제자들 간에 갈등과 싸움이 많았지만 부처님은 차원을 달리해서 그런 갈등을 넘었습니다. 숲에 가득한 나무들이 키를 재며 다퉈도 공중에 높이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똑같습니다. 부처님처럼 높고 넓은 차원에서 보면 다툴 일이 없어요. 작은 배로는 무거운 짐을 싣고 다니지 못합니다. 자기 역량을 크게 가져야 합니다.”
양산=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