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성과 자랑…유세장 같았던 '윤미향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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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윤미향 전 정의기역연대 이사장의 기부금 유용 혐의 형사공판이 열린 지난달 29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재판정. 검찰이 현직 국회의원인 그에 대한 공소 요지를 밝히자 변호인은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고는 “검사는 굉장히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현실 인식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변호인은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1000회가 넘는 집회를 이어왔고 세계에서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았다”는 등 10분가량을 ‘공적’을 늘어놓는 데 쏟았다. 검사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광식 사회부 기자
벌써 11번째 공판이다. 2020년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이 지난 30년 동안 자신을 이용해 받은 후원금을 유용했다”고 폭로하며 이 사건이 불거졌으나, 1년 이상이 지나서 공소가 제기됐고 재판도 지지부진하다.윤 의원 측은 이날도 기회만 나면 ‘악의를 갖고’ ‘감정에 치우쳐’ 등의 표현으로 검찰을 공격하며 재판 진행을 어렵게 했다. 법리와 팩트에 기반한 반박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책상 위 서류에 바짝 붙어 앉은 공판검사와 달리 윤 의원은 의자에 등을 기대 이따금 딴 곳을 응시했다. 1시간 반의 공판 후 휴정 시간엔 지지자들과 악수하며 “안색이 좋아졌어요” “더 예뻐졌네” 등의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힘들지 않냐는 지지자들의 걱정에 윤 의원은 “네, 저는 괜찮습니다”라며 밝게 웃었다. 지지자들은 약자를 위해 힘써온 시민단체를 부당하게 탄압하는 검찰과 맞서 싸우는 ‘투사’ 윤 의원을 위로하는 분위기였다. 법리로 싸워야 할 법정을 거리 유세장처럼 ‘감성’으로 지배할 만한 곳으로 여기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앞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이석기 전 의원, 한명숙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재판 결과에 불복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윤 의원은 보조금관리법 위반, 지방재정법 위반, 사기 및 준사기, 기부금품법 위반, 업무상 배임·횡령 등 여덟 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혐의의 유무죄는 재판이 끝나봐야 알 것이다. 하지만 정의연이 자선단체가 아니라 시민단체여서 기부금을 ‘임의로’ 써도 된다는 변호인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모금한 돈을 고깃집이나 과자가게, 마사지숍에서 쓴 ‘팩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남는다.
이날 재판은 촛불을 등에 업고도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끝내는 ‘검수완박’에 운명을 건 더불어민주당 586운동권을 떠올리게 했다. 더 일찍 검찰의 손을 묶었다면 검찰 대신 수사를 맡은 경찰이 자신들의 불법을 눈감아줬을 것으로 믿었을까. 법은 ‘필요하면 만들면 되는’ 선택적 도구쯤으로 본 건 아닐까. 586운동권과 정의연의 현실 인식은 시민들의 상식에서 너무도 먼 곳으로 멀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