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업인 발목 잡는 '100년 전 사람'

김동욱 중소기업부장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세상에 완전히 끝이 나는 일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외쳤던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인들을 만나다 보면 회사 크기와 관계없이, 세기의 천재가 남겼다는 일성이 떠오를 때가 많다. 끊임없이 일을 찾고,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고, 남들이 보기엔 ‘그만하면 됐다’ 싶은 성과에도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 모습이 딱 다빈치의 외침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부장을 맡은 이후 만난 기업인들도 기존의 경험칙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해 창사 이후 처음으로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자동차 부품업체 NVH코리아의 구자겸 회장은 “할 일이 많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퇴행주의'에 막힌 기업가정신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비롯해 폭스바겐과 포드 등에 차량용 내장재를 공급하는 이 회사는 최근 전기차용 제품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조만간 25만~30만 대 분량 전기차 내장재 생산시설을 갖춘 뒤 전기차 100만 대 시대에도 대비하겠다”는 게 구 회장의 각오다. 그에게 매출 1조원은 종착역이 아니라 매출 2조, 3조원으로 가는 중간 경유지일 뿐이다.

국내 주요 대형 병원에 환자용 음식을 온랭 보관할 수 있는 배식 차량을 공급하는 명세CMK의 김종섭 대표는 사무실에 첫 수출 물량을 실은 컨테이너선을 직접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브라질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쉽지 않은 신시장을 하나씩 개척할 때마다 사진을 보고 용기를 얻고, 각오를 다진다고 한다.

하지만 역동적이고 도전적인 풍경은 기업인들로부터 한 발짝만 떨어져도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오히려 도전과 변화보다 안주와 정체를 선택하는 것을 더 흔하게 볼 수 있다.때론 시간을 거슬러 마치 100년 전 과거로 돌아간 것과 같은 당혹감을 느낄 때도 적지 않다.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광주광역시 복합쇼핑몰 유치 공약과 관련해 빚어졌던 해프닝이 대표적이다. “광주에 복합쇼핑몰이 없어도, 오일장이 세 개나 있다”(나경채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농촌 공동체적 사고방식에 기반한 쇼핑몰 유치 반대론이 공개적으로 나온 것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英 실패 전철 밟지 말아야

개인 차원에서 낭만적이고 목가주의적 향수를 느끼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이를 지향해야 할 가치로 삼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도전과 혁신, 발전보다 전원 사회에 대한 동경이 역사 발전의 발목을 잡은 명확한 선례도 있다. 경제사학자 마틴 위너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에선 농업적 가치관에 기반한 반(反)기업 정서가 확산하면서 산업자본가들까지 교외 생활을 동경하고 변화를 꺼렸다. 여가를 즐기려는 지주문화가 널리 퍼졌고 혁신과 이윤 추구는 죄악시됐다. 도시 생활과 자본주의, 산업주의가 혐오의 대상이 되면서 영국은 산업혁명기 경쟁의 대열에서 독일과 미국에 밀려 빠르게 도태됐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경제 성장의 성과를 스스로 허물었던 옛 영국의 과오와 얼마나 다를까. “개인차가 있다는 거 인정한다. 많이 바뀔 사람은 많이 바뀌어서 많이 기여하고, 적게 바뀔 사람은 적게 기여하면 된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더라도) 남의 뒷다리는 절대 잡지 마라!”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일갈(1993년 오사카 발언)은 여전히 울림이 크다. 세기의 경영인이 외친 30년 전 경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