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진정한 진보적 기업관과 경제인 사면

정치권의 반기업 정서로 빚어진
경제인 사법 단죄에 경쟁력 상실
신산업 독려했던 DJ 본받아야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어느 학자가 한국에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 기업 20개만 뉴욕증시에 상장하면 한반도에서 영원히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의 안보가 세계 경제의 이해관계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범국가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해외 학자들은 왜 많은 대기업 경영자가 구속되느냐고 묻고는 한다. 사정을 설명하면 진보적인 북유럽 학자들도 공산국가도 아닌 한국에서 왜 그런 것이 문제가 되느냐는 반응이다. 진보 정치의 대명사인 스웨덴은 발렌베리 가문이 6대째 국내총생산(GNP)의 3분의 1 이상을 지배해왔으나 정부에서 오히려 고용창출과 경제성장, 사회 기여에 대한 대가로 차등의결권 등 다양한 특혜를 주고 있다. 덴마크나 네덜란드, 독일 등도 마찬가지다.

북한 등을 제외하면 한국 정치 환경이 세계에서 기업에 가장 적대적이라는 데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정권교체 때마다 기업인들을 오라 가라 하며 무더기로 처벌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인들이 그렇게 비도덕적인가? 국정감사 때마다 기업가들을 근거도 없이 불러다 놓고 호통치는 우리 정치권의 반기업 정서가 문제다.문재인 정부는 이런 구태와 다른 진정한 진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국정과제 1호로 공표한 것이 적폐청산이었고 그 결과 지난 5년은 진정한 의미의 진보와는 아무 상관 없이 분열과 혼란으로 점철되고 말았다.

임기 종료를 앞둔 문 대통령이 사면을 검토 중이다. 고려 대상에는 이명박, 김경수 등 정치인이 많으나 이재용, 신동빈 등 경제인도 보인다. 그중 경제인들의 사면은 국가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시급하다. 물론 경제인이라도 중범죄자는 사면이 곤란하다. 그러나 이재용이나 신동빈이 중범죄자인가? 이재용은 정치적 희생양 성격이 강하다. 일사부재리 원칙을 어기고 두 번 구속된 것도 이상하지만 유죄의 기반인 묵시적 청탁은 우리 법 조항 어디에도 없다. 국정농단이라는 특수한 정치 상황이 아니면 가능성이 작았을 것이다.

우리 경제는 현재 백척간두의 위기인데 삼성전자도 예외가 아니다. 총수가 가석방됐으니 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으나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은 특정경제범죄처벌법 시행령에 묶여 향후 5년간 회사 업무 복귀가 허용되지 않으며 해외 출장도 매번 별도 승인이 필요하다. 이런 상태로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결과 최근 삼성전자는 대만 TSMC의 파운드리사업 급성장과 미국, 중국, 일본 기업의 맹추격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 인수합병(M&A)에 계속 실패했고, 스마트폰도 GOS 사태로 위기다. 이제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라고 내세울 수 있는 사업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대표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는 국가 경쟁력 위기로 연결된다. TSMC 등이 이끄는 대만의 GDP가 올해 우리를 추월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측은 우리 경제의 위기를 생생히 보여준다.수구 좌파와 달리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데 집중한 진정한 진보의 예가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당선된 DJ는 재계 리더들과의 첫 상견례에서 상대 후보를 지지한 기업가들에게 아무 불이익도 없을 테니 불안해 하지 말고 경쟁력 회복에만 집중할 것을 부탁했다. 또 새로운 미래 창출을 위해 디지털에 적극 투자해 우리나라를 현재와 같은 정보기술(IT)과 벤처 강국으로 만드는 초석을 놓았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적 기업관이다.

기업인 처벌의 원인이 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얼마 전 사면되면서 국정농단 사건 자체가 정리된 이 시점에서 그 후폭풍을 맞았던 이재용과 신동빈 등의 경우도 일단락되는 것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역사적 순리일 것이다. 만일 DJ가 지금 대통령이었다면 이들을 즉시 사면해 국가 경제의 미래를 위해 전력투구할 것을 부탁했을 것으로 100%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