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한입 먹어봐 하는 마음으로 썼죠"···첫 산문집 낸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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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10년 만에 첫 산문집“사랑 같은 것은 그냥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던 시인 황인찬이 사랑 고백으로 돌아왔다. 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여지 없이 ‘시(詩)’다. 서효인의 ‘가정집’, 윤동주의 ‘병원’, 이성복의 ‘남해 금산’ 등 시 49편을 묶고 각 시에 대한 글을 더했다. 그에게 최연소 김수영문학상을 안겨준 첫 시집을 낸 지 10년 만에 첫 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을 지난 27일 냈다.
출간
"우리가 함께 시를 읽는다면
함께 성장할 수도 있겠지요"
2일 서울 혜화동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만난 황인찬 시인은 “사람들이 시를 좀더 편안하게 받아들였으면 해서 산문을 택했다”며 “독자들에게 ‘한 번 잡숴봐’ ‘한 입 먹어봐’ 시를 영업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사실 산문을 즐겨 쓰지는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는 시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이번 책은 좋은 시들의 힘을 받아서 편하게 쓸 수 있었어요.”황인찬 시인은 2010년 스물두살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 2년 만에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제31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였다. 젊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젊은 시인이다. 통상 시집은 1000부 안팎 찍는 초판도 팔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의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등은 각 2만부가량 팔렸다. 그 덕에 얻은 벌명 ‘문단의 아이돌’에 대한 소감을 묻자 “10년째 다들 저를 놀리고 있는 것”이라며 웃었다.
새삼스럽지만 시인이 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황 시인은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시라는 형식을 통하면 두렵지 않다”고 했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말하기를 통해 오히려 제 삶이 해방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저 있어요. 시를 읽고 쓰는 일은 바로 그 해방을 공유하는 일이에요.”
동시에 시 읽는 일은 슬픔이기도 하다. 인간은 저마다 ‘나’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홀로 있는 슬픔을 시가 정확하게 보여주고 그려준다”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위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의 첫 시가 박상순 시인의 ‘너 혼자’인 이유다.책은 시인의 서재에서 나누는 차담 같다. 시 49편에 대한 에세이는 존댓말로, 말하듯 썼다. 1년간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연재된 글을 고르고 고쳐 묶어낸 덕분이다. 황 시인은 “입말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며 “무엇보다 독자들이 시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글 곳곳에서 시인 황인찬뿐 아니라 생활인 황인찬의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집이 곧 작업실인 30대 중반 프리랜서는 “한국에서의 삶은 언제나 집과의 싸움인 것 같다”고 토로한다.
교실, 학교를 곧잘 시적 공간으로 삼던 시인은 이번 책에서 ‘어른이 되는 일’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정현우 시인의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를 소개하며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이렇게 애써 고립되고자” 하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식이다. “어른이나 책임에 대해 자꾸 말하는 건 제가 아직 어리고 덜 자란 상태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2010년대 들어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학계의 고민이 많았어요. 저도 30대를 통과하면서 작가로든 사회 구성원으로든 ‘나는, 내 문학은 무얼 할 수 있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기후위기, 페미니즘, 장애인 인권···. 초연결 사회,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폭력에 연루돼있다는 걸 자각하게 됐으니까요.”
성장을 고민하는 시인은 끊임 없이 시의 세계를 확장하는 중이다. 첫 산문집에 이어 올해 첫 '시 그림책'도 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시를 통해 말하는 게 제게 제일 익숙한 소통 방식이에요. 좋은 시로 계속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