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논문, 13%가 '돈만 내면 되는' 학술지에 실렸다

강태영 강동현씨 보고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아들의 논문 실적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고등학생이 쓴 국제 학술논문 상당수가 부실 학술지나 학회를 통해 발표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적절한 심사 없이 돈만 내면 논문을 실어주는 경로로 논문을 게재했다는 의미다.

카이스트 경영공학 석사 강태영씨, 시카고대 사회학 박사과정 강동현씨는 이 같은 내용을 담아 '논문을 쓰는 고등학생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봅시다'라는 보고서를 2일 공개했다. 국내 고교생들이 쓴 해외논문을 전수조사해 지난달 18일 발표한 보고서의 후속이다. ○논문 찍어내는 '논문 방앗간' 학술지
연구진이 2001년부터 2021년 사이에 국내 213개 고등학교 소속으로 작성된 해외 논문 558건을 조사한 결과 이중 72건(12.9%)이 '의심스럽거나 약탈적인 학술지·학술대회'에서 발행됐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운영하는 건전학술활동지원시스템에 따르면 '약탈적 학술지'란 적절한 심사없이 돈만 지불하면 무조건 게재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학술지다. 본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려면 동료 학자들의 '피어 리뷰'(peer review)와 수정을 수차례 거쳐 학술지 심사위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저명한 학술지의 경우 제출된 논문을 승인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에 게재 경쟁이 심하다.

연구진은 "약탈적 학술지·학회는 심사 과정은 최소화하고 적게는 100만부터 많게는 400만원까지의 게재료를 받는 데 집중해 '논문장사'를 하곤 한다"며 "이번 조사에서 다룬 550여개 논문들 중에는 이런 약탈적 학술지를 포함해 질적 수준을 의심케하는 학술지가 상당히 많았다"고 지젓했다.예를 들어 한 외국어고 학생과 자율형 사립고 학생은 대학 교수, 박사들과 함께 'Experimental and Therapeutic Medicine'이라는 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다. 이 학술지는 2018년 세계적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인 스코퍼스(SCOPUS)에서 등재가 취소됐고, 해당 학술지를 발간하는 출판사 스판디도스(Spandidos)도 마구잡이로 논문을 찍어낸다는 의미에서 일명 '논문 방앗간'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학교 유형별로 따지면 고교생이 부실 학술지와 학회를 통해 논문을 내는 경우는 자율고(자율형사립고, 자율형공립고)·외고·일반고에 특히 많았다. 이들 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이 쓴 논문 가운데 22.4%가 부실학회·학술지에 실렸다. 과학고는 10%, 영재고는 5.9% 순이었다.

부실한 경로로 발표되는 고교생 논문의 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20년에는 출간된 16편의 고등학생 공저 국제 학술논문 중 37.5%(6편)가 부실학회·학술지에 개제된 논문이었다.부실 학술지 비율의 증가 추세는 정책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2014년, 2018년에 각각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에 고교생 논문을 쓸 수 없도록 하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고등학생이 작성한 논문 편수가 급감했지만, 부실학회·학술지를 통해 나오는 논문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연구진은 같은 시기 국내 학술지에 발표된 고교생 논문도 분석했는데, 의약학 분야 논문의 비율이 높아 '입시 전략용 논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2001~2021년 발표된 고등학생들의 국내논문은 329건, 학생 저자 950명을 분석한 결과 자율고·외국어고·일반고 논문의 19%가 의약학 분야였다. 과학고와 영재고는 각각 10.9%, 5.6%가 의약학 분야였다. 연구진은 "중등 교육과정과는 유리된 입시전략용 논문일 가능성을 의심케 한다"고 분석했다.
○"교육부 조사로 못 잡아낸 논문 많다"
연구진은 지난달 25일 교육부가 공개한 '고등학생 이하 미성년 공저자 연구물 검증 결과'에서 교육부가 파악하지 못한 고교생 논문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교육부는 2007~2018년 발표된 1033개 연구물 중 미성년자가 부당하게 공저자로 등재된 연구물이 96건이라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대학교원 작성에 참여한 미성년자 논문'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진은 "고등학생끼리만 논문을 자성한 경우, 국내 고등학생이 해외 대학 교수나 고등학교 교사와 함께 작성한 논문의 경우 교육부 조사 방식으로는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