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등장한 '정년 연장' 카드…고용·임금 유연성이 먼저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년 연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파른 저출산·고령화로 줄어드는 핵심 노동인구(25~59세)를 늘리자면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게 인수위의 설명이다. 구체적으로는 현행 60세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65세 정년’은 문재인 정부가 약 3년 전부터 수시로 제안했지만 그때마다 ‘선심성’ 논란만 키우다 포기한 노동시장의 핫이슈다. 이번 인수위의 제안에서 ‘표 계산’ 의도가 보이지 않는 점은 다행이지만 정년 연장이 올바른 방향인지, 또 지금이 적절한 논의 시점인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정년 연장은 노동 공급을 늘리고 째깍째깍 다가오는 연금 고갈 시기를 늦출 수 있는 장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플랫폼 산업이 급팽창하는 등 노동시장에 메가톤급 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정년 65세 연장’은 섣부르고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다. 더욱이 현행 정년 제도도 생산성과 관계없이 60세까지 무조건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 부담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실제로 2016년 ‘60세 정년제’ 시행 이후 많은 청년이 취업에 실패하면서 세대 갈등이 표면화한 경우가 많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작년 조사에서 기업들은 ‘정년 60세 의무화’로 신규 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고 정규·비정규직 간 이중구조도 심화했다고 답했다. 또 10곳 중 7곳은 ‘65세 정년 연장’이 일자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도입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경직된 정년 제도가 거대 귀족노조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장치로 전락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완성차 3사 노조가 최근 단체협상 테이블에 ‘정년 65세 연장’을 단골 메뉴로 올리고 있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핵심은 정부가 기업에 획일적인 정년 제도를 강제하기보다 취업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다. 60세 정년이 지난 근로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고용 중인 기업이 이미 44%에 달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60세가 넘어도 기업이 필요하면 고용을 연장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만들어져 있다는 얘기다.

지금과 같은 정규직 위주의 고용구조와 연공급 제도로는 당면한 노동시장 위기를 헤쳐나가기 어렵다. 정년 강제 연장은 노동시장 기득권 집단의 영향력을 키워 고용 없는 성장을 더욱 고착화하는 악수일 뿐이다. 인구 대책이라며 정년 연장 문제에 매달리는 편법은 인구 문제와 고용 문제를 모두 꼬이게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