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국회' 재연한 ‘검수완박’ 입법…결론은 사법부로? [양길성의 여의도줌인]

사진=뉴스1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 마지막 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일 표결에 들어갑니다. 이변이 없는 한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검수완박 입법을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석 수가 절반을 넘기 때문입니다.

법안 통과가 예정된 수순이 되면서 이제 검수완박을 둘러싼 시선은 사법부로 향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을 비롯해 대검찰청 등 법조계가 “입법 절차 혹은 법안 자체가 위헌”이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이 풀어야 할 문제를 사법부 판단에 맡기는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꼼수 탈당’에 ‘회기 쪼개기’까지 편법 난무

민주당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 중 하나인 검찰청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습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을 기존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범죄로 축소하는 내용의 법안입니다. 그동안 민주당의 법안 처리 과정을 보면, 온갖 편법과 꼼수가 난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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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 법안 심사 때 민주당은 최장 90일 논의가 보장된 안건조정위원회를 ‘꼼수 탈당’을 통해 8분 만에 종료시켰습니다. 안건조정위 안건은 재적위원 6명 중 4명이 찬성하면 심사를 거친 것으로 간주합니다.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무소속 1명이 참여하는 구조인데, 민형태 민주당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 자리에 그를 배치한 겁니다. 이후 법안은 27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27일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 뒤에는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서자 민주당은 이를 ‘회기 쪼개기’로 무력화했습니다. 회기 쪼개기는 임시국회 회기를 30일이 아닌 며칠 단위로 소집하는 것입니다. 국회법에 따르면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는 자동 종료됩니다. 이때 안건은 다음 회기에 자동 상정되는 데 이를 활용해 법률을 통과시키는 전략입니다.

“이 XX들”… 몸싸움·고성 오가며 아수라장된 국회

회기 종료에 따라 필리버스터는 종결됐고, 30일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이 표결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국회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는 과정에서 온갖 욕설과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고, 허은아·황보승희 의원도 병원에 갔습니다. 김웅 의원은 ““××, 천하의 무도한 놈들”이라고 욕설을 뱉기도 했습니다. 또다시 시작된 '동물국회'였습니다.
국회는 이날 오후 4시22분께 검찰청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법안은 찬성 172명, 반대 3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습니다.민주당은 이어 또다른 검수완박 법안인 형사소송 개정안을 곧바로 상정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또다시 필리버스터에 나섰으나 민주당의 회기쪼개기로 이날 밤 12시 자동 종료됐습니다. 이에 따라 3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표결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헌재로 간 '검수완박'... 결론은 사법부가

3일 법안 처리를 앞두고 국민의힘과 대검찰청은 법적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대검은 ‘권한쟁의 심판청구’ 팀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팀을 별도로 나눠 대응 중입니다. 법안이 공포되면 헌법재판소에 ‘법안 내용이 위헌’이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권한쟁의 심판은 국가기관 간 권한의 유무와 범위를 두고 다툼이 있을 때 헌재 판단을 구하는 제도입니다. 대검은 법률 심사를 맡은 법제처에 정부입법정책협의회 소집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시민단체에서는 전·현직 대학교수 6000여명으로 이뤄진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도 법안 통과 즉시 위헌 소송을 제기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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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지난달 27일 박병석 국회의장과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을 상대로 '검수완박' 법안 본회의 상정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데 이어 이틀 뒤에는 본안사건인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권한쟁의심판은 전원재판부(재판관 9명)가 심리를 맡습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꼼수 탈당’이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헌법재판소는 법안 내용 뿐 아니라 입법 과정에서 위헌 요소가 없는지 살펴볼 전망입니다.

일각에서는 여야가 힘 대결로 가면서 정치권이 풀어야 할 의제를 사법부 판단에 맡겼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입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행정수도 이전, 통합진보당 해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등이 헌법재판소 판단에 따라 그 결과가 결정됐습니다.

이를 두고 선출된 권력이 아닌 사법부가 정치적 결정 내리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 원칙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반대로 다수당이란 이유로 특정 정당이 '입법 독주'를 할 때 사법부가 이를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고성과 몸싸움만 있고 협치의 자세는 찾기 힘든 국회 모습을 보면 검수완박 추진 여부를 사법부 판단에 맡기는 게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검수완박 법안의 위헌 여부를 떠나 이번 입법 처리 과정에서 보인 '꼼수 탈당', '동물 국회' 등의 모습은 여전히 후진적인 국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