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일, 생각 바꿔 협력하면 '윈윈'할 경제분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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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윤 < 한국외대 명예교수·前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윤석열 정부 출범에 앞서 경색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정진석 국회부의장을 대표로 하는 정책협의단이 일본에 파견됐다.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기업의 한국 징용공(징용 피해자의 일본식 표현)에 대한 피해를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게 도화선이 돼 냉랭해진 양국 관계개선을 위한 것이다. 인접국인 한일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양국 모두 자유시장경제를 정착시켜와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도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경제 문제 중심으로 한일 간 논의가 필요한 경제협력 소재를 살펴보겠다.
첫 번째는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의 재편이다. 세계화 시대가 끝나고 미·중 간 경제 갈등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장기화로 인해 한일 모두 세계화 시대에 구축한 서플라이 체인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새로운 서플라이 체인 구축이 필요한 시점인데, 그러려면 한국은 물론 일본도 양국 간 긴밀한 협력이 중요하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대외지향적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을 외부 경제로 활용해 성장해왔기 때문에 일본 경제와 긴밀해졌다. 한국 기업은 자연스럽게 일본 기업이 축적한 생산기술을 대대적으로 흡수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의 생산과정에 필요한 부품·소재는 일본산이 가장 적합할 수밖에 없었다. 역으로 일본 기업이 외부로부터 일련의 투입을 하는 경우에도 가장 적합한 것은 한국 제품이었다.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할 때 서로가 필요한 이유다. 동남아 등으로부터 저임금을 활용한 저부가가치 부품을 수입하는 경우에도 한일 기업이 기술 지도한 기업 제품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일본-동남아 국가들로 연결되는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할 수 있다.두 번째는 대(對)중국 경제교류에 있어서의 한일 협력이다. 중국은 경제활동 과정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데다, 한일 모두 미중 갈등에 있어 미국과의 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입장이라 지금까지보다 더한 중국 정부의 비합리적 통상 개입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일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요구에 무력하게 순응해왔다. 하지만 양국이 탄탄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면 지금보다는 월등한 대중 교섭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한일 모두 대중 교역이 큰 비중을 차지해 중국과의 관계를 경시할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은 산업 부문에서 중국보다 한일 기업이 앞서있기 때문에 양국이 협력하면 상당 부분 대응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자원개발 부문이다. 4차 산업혁명 및 탈탄소화 추진과 더불어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에 투입되는 니켈·망간 등 다양한 종류의 자원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자원들은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일과 같이 가공무역을 추구하는 국가들로서는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인데 그중 하나가 ‘개발수입’이다. 해외 광산을 구입해 개발·수입하는 활동은 상당한 리스크를 수반하므로 몇몇 국가들이 협력해 동반 진출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자원개발이 더욱 절실해진 지금이야말로 한일 공동 진출을 확대해야 할 시점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기업은 현장대응력이 뛰어나고 건설공사 공기를 단축시킬 만큼 추진력이 있는 데 비해 일본 기업은 정보력과 기획력이 돋보이며 자금 동원력이 월등하다는 장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아 협력의 여지가 많다.
넷째, 탈탄소화 협력이다, 탈탄소화는 인류가 생존의 차원에서 수행해야 하는 거대한 짐덩어리와 같다. 에너지원 가운데 탄소 배출량이 많은 석탄·석유 사용량을 줄이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원전 비중을 높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생산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많은 철광, 석유화학 및 시멘트 등의 생산방식을 개선해 탄소 발생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러한 전력원 구성 재조정과 탄소배출 제로화 추진에는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들어간다. 한일은 부존 조건이 비슷하므로 산업구조를 비롯한 경제적 존립 형태가 흡사해 탄소배출 제로화를 위한 연구개발 방향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탄소 배출량 축소를 위한 연구개발 활동을 한일이 공동 추진한다면 비용도 절약하고 성과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유레카’라는 이름의 첨단기술개발 공동체가 있어 활발한 공동연구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 양국도 이를 참조해 공동기금을 조성하고 탄소배출 제로화 연구부터 시작해 4차 산업혁명 분야에까지 공동연구를 확대해나가길 바란다.
한일 간에는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든지 있다. 과거처럼 한국이 일본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시대는 지났다. 유사한 듯하면서도 적지 않은 이질성을 내포하는 한일 양국이 이러한 이질성을 보완해나가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한일 모두 구미를 빠르게 캐치업(catch-up)해왔고 적지 않은 기간 침체도 겪었다. 이에 더해 중국과 북한의 도전에 직면하다 보니 공동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이번 정책협의단 일본파견을 계기로 한일 간에 다방면에 걸친 협력의 기운이 솟아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