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최전선, 공급망

[한경ESG] Editor's Letter
투자자에서 시작된 ESG가 공급망과 결합하며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는 느낌입니다. 공급망은 기업활동의 본질적 부분과 맞닿아 있습니다. 기업은 원료 소싱에서 부품 조달까지 수많은 협력업체와 함께 움직입니다. 상당수 기업이 누군가의 납품업체이자 누군가의 원청입니다.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공급망에 ESG 잣대를 대면 그 파장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도네시아 팜유 농장이 환경파괴를 초래하지 않는지, 인권침해에 노출된 근로자는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ESG가 주류화를 넘어 전면화되는 것입니다.그동안 공급망 관리는 원가 관리와 납기가 핵심이었습니다.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때 공급하는 업체를 선택하면 충분했습니다. 공급망 ESG 시대는 여기에 환경과 인권이 추가됩니다. 아니, 오히려 ESG가 중심이 됩니다. 가격이나 납기보다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환경과 인권 기준을 충족한 업체가 선택됩니다. ESG가 공급망 참여의 자격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ESG와 공급망의 결합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독일은 내년부터 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합니다. EU 차원의 실사법안도 공개됐습니다. 협력사에서 환경파괴나 인권침해가 없는지 확인하고 감독할 책임을 기업에 부과합니다. 또 EU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직접 배출량뿐 아니라 내재된 간접 배출량까지 보고해야 합니다. 중간재를 생산하는 협력사 관리가 필수입니다. 모두 유럽에서 시작된 움직임입니다. 하지만 공급망 ESG 확산은 지역을 넘어섭니다. 글로벌 기업은 이미 자체 공급망에 ESG를 요구합니다. 애플이 RE100 동참을 요구하면 전 세계 공급사는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공급망 ESG는 나 혼자 잘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협력사와 함께 가야 합니다. 동반성장이 필수입니다. 국가 또는 업계 차원의 공동 대응도 필요합니다. ESG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많은 기업이 RE100에 참여하고 싶어도 국내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구조적으로 재생에너지 조달이 어렵다 보니 우리 기업은 페널티를 안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공급망 실사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플랫폼 구축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세덱스나 에코바디스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업계 차원에서 인권 고충처리망을 함께 만들기도 했습니다.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은 재편기를 맞고 있습니다. ESG가 새로운 질서의 중심축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격변기에는 늘 큰 기회도 주어집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