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받는 아이, 스스로 '부모와 연' 끊을 수 있다

31년만에 가사소송법 전면 개정

직접 친권 상실청구 가능해져
양육권자 등 결정 재판에선
어린 자녀 진술도 의무 청취

법원 양육비 지급명령 후
한 달 내 안주면 구치소行

법무부 "부모중심 양육 소송
자녀중심 소송으로 전환"
앞으로는 부모로부터 학대받는 미성년 자녀가 직접 친권 상실 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양육권자 등을 정하는 재판에선 아무리 어린 자녀라도 이들의 진술을 무조건 들어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사소송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됨에 따라 예상되는 변화다. 정부는 법 개정으로 가사소송 과정에서 자녀 권리를 더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육비 지급을 미루는 부모를 감치(유치장이나 구치소에 가둠)할 수 있는 미지급 기간 요건도 현행 90일에서 30일로 줄어든다.

강화되는 자녀 권리

법무부는 3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가사소송법 전부 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가사소송법이 전면 개정되는 것은 1991년 제정·시행된 이후 31년 만이다. 법무부는 입법 예고 기간에 각계각층의 의견을 참고해 최종 개정안을 확정한 뒤 입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부모가 친권을 남용해 학대 등 자녀 복리를 해치는 경우엔 자녀가 직접 법원에 친권 상실 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특별대리인을 선임해야 친권 상실 청구가 가능하다. 이 같은 조건에선 학대한 부모와 가까운 친척은 특별대리인으로 부적절하고, 관계가 먼 친척은 특별대리인을 맡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 친권 상실 청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성년 자녀의 법정 진술권도 강화됐다. 앞으로는 이혼 등으로 친권자나 양육권자를 지정하는 재판을 할 때는 자녀의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가정법원이 이들의 진술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지금은 13세 이상 미성년 자녀만 진술을 듣게 돼 있다.법무부는 재판 과정에서 자녀 권리가 침해되는 일을 막기 위해 변호사 또는 심리학·교육학·상담학·아동학·의학 분야 등의 전문가를 절차 보조인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았다. 이상갑 법무부 법무실장은 “절차 보조인이 소송 대리업무까지 맡는 것은 아니다”며 “독립적인 의사 표현이 가능한 미성년자는 직접 소송을 제기하고, 그렇지 않은 영유아 등은 친권 상실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지방자치단체장이 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육비 지급 강제 규정 강화

이혼 후 양육비 지급을 미루는 부모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현재 법원은 양육비 지급 이행명령을 내린 뒤 3기(보통 3개월 이상) 안에 지급 의무자가 이를 따르지 않으면 감치명령을 한다. 앞으로는 이행명령 후 30일 안에 양육비를 안 주면 법원이 감치명령을 내릴 수 있다. 감치는 재판부의 심리를 방해하는 등 질서를 훼손한 사람을 재판부 직권으로 경찰서 유치장, 구치소 등 일정한 장소에 최장 20일 동안 수용시키는 제재다.

이는 법원이 명령해도 실제 양육비가 지급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2015~2016년 법원이 양육비 지급명령을 내린 뒤 감치 결정이 나오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7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치 요건 변경 외에 가정법원이 재판 도중 내린 양육비 지급 처분에 집행력을 인정해주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됐다.이와 함께 가사소송과 관련한 민사소송도 가정법원에서 맡을 수 있게 된다. 재판부가 분산되면 소송이 장기화하고 관련 비용도 증가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실장은 “부모 중심으로 설계된 자녀 양육 관련 소송 절차를 ‘자녀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취지로 가사소송법을 개정하게 됐다”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가사소송 절차에서 미성년 자녀의 목소리를 더 많이 반영해 이들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