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국 교수사회의 민낯

작고한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한국 교수사회의 사표(師表)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항일 독립운동을 벌이다 해방 직후 ‘미래 인재 양성’을 외치며 교육계에 투신했다. 그는 박정희부터 김대중 정부까지 열두 차례나 총리직을 제의받았지만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와 교육자로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신조를 지킨 것이다. 그는 교수들이 한국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부조리한 사회에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교수(professor)라는 말은 ‘스스로 공언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중세 유럽에서 자신이 믿고 알고 있는 것을 공언하는 것은 목숨을 건 행위였다. 천문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피사대학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지동설)에 대해 “증오한다”고 말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평생 가택연금을 당해야 했다.1960~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교수들은 시대 정신과 지식 담론을 제시하고 사회를 이끄는 존경받는 그룹으로 꼽혔다. 교수를 ‘양심적 지식인’으로 여기는 인식이 널리 퍼진 때였다. 실제로 서슬퍼런 독재에 맞서 지조 있게 맞서는 강골 지식인이 많았다.

한국 교수사회의 위기는 대학의 위기와 맞닿아 있다. 1990년대 들어 정부가 재정 지원을 매개로 대학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대학은 그에 순응하면서 사회 비판과 성찰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또 새로운 학문과 사상의 생산보다 수입 지식에 의존해 ‘지식사회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이득이나 챙기는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공직을 탐하며 정치권 주위를 얼쩡거린다는 의미로 ‘폴리페서’란 단어가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어제 자진 사퇴한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그런 한국 교수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케이스다. 그는 지명 직후부터 가족 전체 풀브라이트 장학금 수령 특혜와 교비 횡령, 막말 논란, 방석집 논문 심사 등의 의혹에 휘말렸다. 김 후보자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례에서 보듯 교수라는 명예로운 자리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공직을 어지럽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서글픈 현실이다.오는 15일은 스승의날 40주년이다. 김 전 총장과 같은 존경받는 스승을 찾기 힘들다. 한국 교수사회가 자성(自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