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사료] 이산가족 최초 합의때 '자유로운' 문구 신경전

"자유로운 방문과 자유로운 상봉" vs "꼭 상봉 앞에다 자유로운 붙여야 하나"
남북이 1972년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최초 5개 항 합의 때 '자유로운'이란 문구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부가 4일 공개한 1972년 6월 5일 열린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제13차 의제문안 실무회담 자료를 보면 본회담에 상정할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5개 항 협의 과정에서 문구 표현에 대한 양측의 견해차가 드러난다.

이 회담에서 적십자 본회담에서 논의할 의제 5개 항을 채택했는데, 이는 남북간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한 최초 회담 의제였다.

당시 합의된 의제는 1항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의 주소와 생사를 알아내며 알리는 문제, 2항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 사이의 자유로운 방문과 자유로운 상봉을 실현하는 문제, 3항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 사이의 자유로운 서신 거래를 실시하는 문제, 4항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의 자유 의사에 의한 재결합 문제, 5항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 등이다. 당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실무회담에서 북측 대표는 남측의 회담 태도를 꼬집어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그는 "25년 만에 처음 한자리에 마주 앉았는데 남측이 어떻게 되었단 말이냐는 식으로 나오거나 문건을 책상에 집어 던지는 등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했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서 "아름답고 고상한 우리말이 있음에도 무슨 놈의 '연구'라고 하는 등 비문화적인 발언과 행동을 서슴없이 했다"면서 "우리는 참아가면서 옳은 민족적 자세를 가지고 예의를 지키도록 경고하고 넘어간다"고 지적했다. 이에 남측 대표는 "27년간의 단절이 서로의 표현이나 진의를 전달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요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고 응수했다.

그는 의제 2항과 관련, "상당한 토의와 서로의 대화를 통해 '자유로운 방문과 자유로운 상봉을 실현하는 문제'로 확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귀측(북측)이 가족들과 친척들의 자유로운 상호방문이라는 용어를 썼으나 자유로운 방문이라고 하는 표기는 자유로움과 방문이 합해진 하나의 단어라고 하는 것을 거듭 밝혀왔기 때문에 귀측의 주장을 우리가 수용하고 자유로운 방문이 하나의 단어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고 말했다. 남측은 2항에 대해 '자유로운 방문과 자유로운 상봉'으로, '자유로운'을 두 번 표기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에 북측은 "자유로운 방문 문제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 밝힌 입장이 그것이 딱 하나의 단어라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굳어진 표현이라는 말을 썼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앞에 붙은 자유로운 방문이 방문에만 붙고 상봉에는 붙지 않는다, (남측이) 이렇게 이해는 하지 않았으리라 본다"고 대꾸했다.

그러면서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하면 그 문법상에서 방문이 있을 뿐 아니라 역시 상봉에도 붙는 것"이라며 "그래서 어떻습니까?, 꼭 그렇게 상봉 앞에다 또 자유로운 방문을 붙여야 되겠느냐"고 따졌다.

결국 북측은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을 실현하는 문제로 하면 좋겠지만, 귀측(남측)의 수정안이 부족함이 있으나 요구를 고려해서 (귀측의 안대로) 합의 확정하자"고 물러섰고, 5개 항은 합의에 이르렀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 5개 조항은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의제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남북간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최초 회담 의제 5개 항"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