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부동산 국정과제, 알맹이가 없다"

추상적 나열에 시장 '불만'

재건축·재개발 완화 구체안 없고
안전진단·재초환 언급도 안돼
심리 위축…거래절벽 불가피

LTV 높여도 DSR 비율 그대로
소득 낮은 실수요자 혜택 없어
사진=연합뉴스
“예상보다 추상적이고 완화 폭도 작아 매수세가 식고 있다.”(서울 영등포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새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담은 국정과제를 내놓은 이튿날인 4일. 서울 주요 지역 공인중개사무소는 대체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생애 첫 주택 구매자의 담보인정비율(LTV) 80%로 상향 등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수요자들의 반응도 냉담한 편이었다. 재건축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 법 개정 없이 시행할 수 있는 대책도 담기지 않아 당분간 ‘거래절벽’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알맹이 없어…‘희망고문하냐’

이날 부동산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새 정부의 국정과제 발표에 대해 불만과 아쉬움을 드러내는 글이 쏟아졌다. ‘주택 공급 확대 등 그럴듯한 목표만 제시돼 있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없다’ ‘백화점식 나열만 돼 있을 뿐 정작 내 집 마련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건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서울 영등포동에 있는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시장에선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광범위할지에 관심이 많았다”면서도 “대통령 선거 이후 달아오르는 듯했던 실수요자들의 매수 심리가 발표 이후 오히려 다시 얼어붙은 듯하다”고 전했다.

생애 첫 주택 구입자의 LTV 80% 적용과 관련해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가 빠져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가구는 투기과열지구 60%, 조정대상지역에서는 70%의 LTV를 적용받는다. 이를 현재보다 10~20%포인트 높여준다는 것이지만 DSR을 유지한 상태에서는 매력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DSR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현재 총대출이 2억원 이상인 차주에겐 DSR이 40% 적용되고 있다.소득 수준이 낮거나 중간 정도인 차주는 LTV보다 DSR이 대출 규모 산정 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생애 첫 주택 구입 관련 LTV 혜택을 받으려면 부부 합산 연소득이 1억원 미만이어야 하고, 주택 가격 기준이 9억원 이하여야 해 서울에선 크게 실효성이 없다”며 “여기에 DSR 규제가 그대로면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대출 규모는 큰 변동이 없다”고 지적했다.

“관망세·거래절벽 더 이어질 듯”

새 정부의 규제 완화를 기다리던 실수요자도 당분간 관망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서울 아파트 월평균 거래량은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세제 개편과 대출 규제 완화를 지켜본 뒤 매매에 나서겠다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안전진단 완화 등 시행령·행정규칙 변경만으로 빠르게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 부동산 아젠다에서 빠진 데다 LTV 완화 효과도 미미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얼어붙은 주택 거래 시장이 되살아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당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30년 이상 노후 공동주택의 정밀안전진단 면제와 안전진단 구조안전성 비중 축소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와 관련, 지난 2일 인사청문회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재건축 안전진단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시장을 너무 한꺼번에 자극하고 혼란에 빠뜨릴 수 있어 당분간 건드리면 안 된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서울 잠실동에 있는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간간이 급매 위주로 거래되는 건을 제외하면 최근 1주일간 성사된 계약이 단 한 건도 없다”며 “시장 분위기를 묻는 문의 전화는 있지만 실제 매수를 추진하려는 실수요자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부동산 관련 국정과제 대부분이 입법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도 시장 기대치가 낮아지는 요인이다. 김효선 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법 개정 등 절차를 요구하는 부분이 많아 현실화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당장은 실수요자의 관망세와 거래절벽 등의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정/이혜인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