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지능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제프 호킨스 '천 개의 뇌' 번역 출간

인간은 우주의 크기와 나이가 얼마인지, 지구가 어떻게 진화했고 우리가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밝혀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를 탐구하고 비밀을 밝히는 도구를 만들어내고 있는 인간은 유전자가 아니라 '지능'과 '지식'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계속 지능은 무엇인지, 뇌는 지능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지금까지의 인공 지능(AI)에는 왜 지능이 없는지 등의 질문을 던진다.

불과 1.5㎏의 세포 덩어리에 해당하는 뇌는 여전히 과학자들의 탐구 대상이다. 미국의 신경과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인 제프 호킨스는 최근 번역 출간된 '천 개의 뇌'에서 인간의 뇌는 하나가 아니라 독립적인 수천 개의 뇌로 이뤄져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는다.

주류 과학자들은 감각신경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 입력이 뇌의 특정 장소, 즉 신피질에 수렴된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각각의 피질 기둥이 투표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건 피질 기둥들이 투표를 통해 이룬 합의의 결과라고 말한다.

물론 저자는 그동안의 뇌과학 연구 성과를 종합하며 대뇌 피질 가운데 가장 최근에 진화된 부위로, 6개의 세포층으로 구성된 '신피질'(neocortex)을 중심으로 뇌의 생물학적 구조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신피질은 포유류에만 존재하며, 인간의 신피질은 뇌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쌀알 크기(2.5㎣)만 한 공간에 신경세포 10만 개가 있고, 시냅스(신경세포 간 연결 부위)는 5억 개다.

신피질에는 쌀알 크기의 피질 기둥 15만 개가 서로 연결돼 세계를 인식하고 지능을 창조한다.

저자는 인간이 태어날 때 신피질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지만 경험을 통해 풍부하고 복잡한 세계를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또 뇌는 시각이나 촉각 등을 통해 입력되는 정보의 변화를 인식하고 배우며, 신피질은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기준틀'이란 일종의 지도를 사용해 세계를 인식하는 모형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책은 신피질이 하나의 피질 기둥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저자는 뇌졸중이나 외상으로 수천 개의 피질 기둥이 손상되더라도 뇌는 큰 문제 없이 작동하며, 세계를 인식하는 모형들은 수천 개의 피질 기둥에 분산돼 있고 이 피질 기둥들은 완벽히 독립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피질 기둥들이 무수히 쏟아져 입력되는 정보들에 대해 투표를 하고 하나의 답을 완성한다"며 "뇌는 하나가 아니라 독립적인 수천 개의 뇌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한다.

명저로 꼽히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 서문에서 "뇌 속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 합의와 심지어 분쟁까지 일어난다고? 이 얼마나 놀라운 개념인가! 이것이 핵심 주제"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는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을 '2021년 올해의 책'으로 꼽으며 "뇌의 구조에 대한 매혹적인 통찰과 지능 기계의 미래에 대한 단서들로 가득하다.

진정한 AI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매우 흥미로운 이론을 선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데아. 이충호 옮김. 384쪽. 2만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