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래도 잡무에 쫓기는데 이렇게까지…" 한숨 쉬는 교사들 [세상에 이런 법이]

세상에 이런 법이

교사들 수업자료에 저작권료 부과?
탁상법안 vs 저작권 지켜야

정청래 의원 발의 '저작권법 일부개정안'
교사들 수업자료에도 저작권료 부과해야
수업자료 하나하나 저작권료 내진 않지만
교부금에서 연간 69조원 가량 낼 듯

공익적 목적 가진 공교육에 저작권료 부당
교육현장서 교사들 위축될까…부작용 우려도
저작권업계 "오히려 더 자유롭게 사용가능할 것"
사진=뉴스1
교과서만으로 수업을 할 수는 없다. 수업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와 같은 영상물부터 참고서까지 여러 수업자료가 필요하고, 현재 초·중·고등학교 현장에서는 이 같은 수업자료가 흔히 사용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육목적에 한해 저작물을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 덕분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교육현장에서 저작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각 교육청이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될지도 모른다. 지난달 6일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로 발의되면서다. 이 법안은 초·중·고등학교 현장에서 활용되는 교육자료(책, 그림, 영상물 등)에 대해 저작권 사용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초중고도 대학처럼 저작권료 납부하라

현행 저작권법 제25조는 교육기관에서 수업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먼저 사용하고 이후에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의 공익적 성격을 고려해 교육 현장에서 일일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저작물을 먼저 사용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동시에 저작권법 제25조 6항은 "다만, 고등학교 및 이에 준하는 학교 이하의 학교에서 복제 등을 하는 경우에는 보상금을 지급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수업 목적으로 저작물을 사용해도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 있고 대학교 등에서만 저작권료를 납부하고 있다.

정 의원이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의 핵심은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까지 수업목적으로 사용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료를 납부하도록 그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최초 '저작권법'이 제정되던 당시 초·중·고등학교의 열악한 재정을 감안하여 저작물 이용 보상금을 면제하는 예외규정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현재까지도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저작물 이용 보상금을 전혀 지불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그러나 지적재산권, 저작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으로 이를 사용하고자 할 경우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법안의 취지를 밝혔다.

이어 "현재 각 교육청이 보유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을 고려할 때 적정한 수준의 보상금 지급에 전혀 무리가 없다"며 "이에 초·중·고 현장에서 활용되는 교육자료에 대해 저작권 사용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해 헌법상 보장되는 지적재산권을 보장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만약 법이 통과된다면 현재 대학이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방식대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저작권 신탁 단체인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에 각 교육청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사용해 매년 일정금액을 지불하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문체부는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가 교육기관으로부터 수업목적으로 사용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료를 대신 징수해 각 저작권자에 배분하도록 하고 있다. 수업자료로 저작물을 사용할 때마다 저작권자를 찾아서 저작권료를 지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는 학생 1인당 연간 기준금액을 지불하는 '포괄방식'과 각 저작물 사용량에 따라 과금하는 '종량방식'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대학이 편의상의 이유로 포괄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현재 일반대의 경우 학생 1인당 연간 1300원이다.

초·중·고등학교가 포괄방식을 이용한다면 비용은 일반대 금액 적용 시 작년 학생 수(532만3075명) 기준 연간 약 69억원 정도로 예상된다.다만 정 의원실 측은 "공익적 성격을 고려해 초·중·고등학교의 경우 학생 1인당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대학보다 더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은 공익 vs 정당한 대가 지불해야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저작권료 지불이 합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교육이 공익적 목적을 가진 만큼 저작물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 관계자는 "저작물 사용에 따른 보상 방법을 찾고 있다"면서도 "공교육의 공익적 성격을 고려해 관련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 교육현장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전 지역 고등학교 교사 전모씨는 "교육청은 보수적인 곳"이라며 "보상금을 나중에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문제생길 것 같으면 수업자료를 쓰지말라고 할 것이고 결국 교사들은 수업자료를 준비할 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정모씨(30)도 "보상금을 주려면 교사들이 어떤 수업자료를 썼는지 기록하고 나중에 제출해야 할 것"이라며 "안그래도 여러 잡무에 시달리는 와중에 이 같은 부작용이 생길까 염려된다"고 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사용도 논란이다. 정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충분하다는 근거를 들었지만 교부금을 넘쳐나는 곳간처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정 씨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최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에서 교부금은 교육 현장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곳에 써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저작권단체는 법안 통과를 통해 오히려 교사들이 수업자료를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온라인 수업 확대로 저작물 사용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저작권료를 정당하게 지불하면 교사들이 걱정 없이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