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바이오텍 헐값으로 하락했지만 M&A 주춤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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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파마 "아직 비싸다"미국 바이오 기업의 주가 하락으로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들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M&A에 뛰어드는 기업은 많지 않다는 평가다. 아직 바이오기업 가치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았다는 빅파마들의 판단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미국 의약전문지 피어스바이오텍은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수준(밸류에이션)이 급락했지만 빅파마들은 여전히 가격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보도했다. 올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대형 제약사 대표들은 "M&A에 나설 것"이란 의지를 밝히면서도 "아직 가격이 더 하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서버린 슈완 로슈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몇 달 간의 기업가치 조정은 시장 가격이 2019~2020년으로 돌아간 수준"이라고 말했다. 고평가된 기업가치가 이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M&A에 나서긴 이르다는 것이다.
슈완 CEO는 높은 기업가치 탓에 초기 기술을 가진 기업들을 주로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IPO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많은 기업이 로슈와 협력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전했다. 미국 증시의 침체로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작은 바이오 기업들이 빅파마와 손을 잡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의미다.
바스 나라심한 노바티스 CEO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그는 "해당 기업을 인수할 만한 과학적 데이터가 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며 "많은 데이터를 살펴봤지만 효과적인 혁신신약을 찾진 못했다"고 말했다.노바티스는 인수 대상 기업의 가치를 20억달러 미만으로 설정한 상태다. 매물로 나온 기업들의 눈높이가 낮아지면 올 하반기께 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롭 데이비스 미국 머크(MSD) CEO도 "기업을 매각하고자 하는 판매자들의 기대치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아직은 매각 대상 기업들에 자금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그는 "유동성 위기를 마주한 일부 기업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다"면서도 "아직 전체적인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조반니 카포리오 BMS CEO는 "시장에서 해당 기업을 바라보는 가치와 이사회가 바라보는 가치가 같아지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폴 허드슨 사노피 CEO는 "일부 바이오 기업들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건 분명하다"면서도 "아직은 제대로 된 인수 대상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시에라온콜로지를 19억달러에 인수한 GSK의 에마 웜즐리 CEO는 "주요 후보물질 등에 따라 전략에 맞는 사업 기회를 계속 확보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투자업계에선 한국 주식 시장이 얼어붙은데다 바이오 기업들의 기술특례상장마저 번번이 막히면서 글로벌 제약사 등과의 M&A를 출구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도 매물이 쏟아지고 있고, 아직 ‘저점이 아니다’고 판단하는 빅파마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마저도 녹록치 않을 것이란 평가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