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제2의 기계시대'…더는 인간의 생산성이 필요하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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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자유코로나19는 일과 직업 세계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왔다. 거리두기로 인한 고립감에 ‘코로나 블루’(코로나19에 따른 우울감)가 유행하더니 거리두기가 해제되자 이제는 ‘엔데믹 블루’(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생기는 우울감)라는 말이 생겼다.
스스로 학습하는 컴퓨터·AI의 발달
새로운 일자리 정책 다시 설계해야
젊은 세대 직장인일수록 출퇴근이나 회식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구인 광고에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소개 문구를 올린 회사가 구직자들 사이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세대 간에도 직업윤리에 관한 생각이 다르다 보니 직장 내에서 다양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일과 직업 세계의 변화는 사실 코로나19 이전부터 진행됐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 발달로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고, 플랫폼 경제가 출현하면서 임시직과 비정규직이 고용시장의 대세가 됐다.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이자 책을 통해 계속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Richard David Precht). 그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신음하던 무렵 《의무란 무엇인가(Von der Pflicht)》를 통해 국가의 역할과 시민의 의무에 대해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세계 곳곳에서 국가의 방역 조치에 불만을 품고 마스크를 벗은 채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의 ‘탈의무 현상’을 통해 국가를 각종 서비스의 제공자로 인식하고, 시민을 서비스의 소비자로 여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 3월 중순 유럽이 코로나19 위협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즈음 프레히트는 《모두를 위한 자유(Freiheit fr alle)》를 선보였다.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일의 종말을 선언하며 ‘미래 사회에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도 독일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일과 노동에 대한 해석은 시대마다 달랐다. 일은 먹고살기 위한 ‘생계 수단’이지만 언젠가부터 ‘자아실현’이라는 거창한 목표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프레히트는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일할 것인지, 그리고 도대체 ‘왜’ 일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스스로 학습하는 컴퓨터와 AI 로봇의 발달로 ‘제2의 기계시대’가 펼쳐지고 고용시장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기계가 거의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자본주의 경제가 인간의 생산성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일과 직업의 개념은 ‘제1의 기계 시대’, 즉 임금노동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에 만들어진 일과 노동의 개념은 낡고 쓸모없어졌다. 정규직, 양질의 일자리, 작업 환경 개선은 의미 없는 요구가 돼버렸다.
책은 ‘제2의 기계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 직업 세계의 변화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알려준다.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 보여주며, ‘보편적 기본소득’에 기반한 사회복지 시스템 등 새로운 일자리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직면한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