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학과 거부하는 서울대…士農工商 세계관에 빠졌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서울대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기 위해 물밑 경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서울대에 내년부터 80명 정원의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해 5년간 공동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고 취업을 보장하는 조건이다. SK하이닉스도 서울대에 같은 요청을 했다.

서울대가 두 회사의 요청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삼성전자는 작년에도 서울대에 반도체 계약학과 운영을 타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삼성은 2019년에도 비메모리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계약학과 설치를 추진했지만, 거센 학내 반발에 부딪혔다. 서울대 일부 교수와 학생들이 “학문을 추구해야 하는 대학이 기술인력 양성소가 되면 안 된다”고 반대했다. “대학에 특정 기업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학과를 개설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발 기류는 지금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든 곳이 연세대 고려대 KAIST 등 7개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대만 유독 반발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이 국가적으로 필요한 산업 인력 양성을 외면하는 행태는 자만심과 특권의식의 발로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을 찾기 힘들다. 아직도 사농공상(士農工商)식 사고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괜한 노파심이길 바란다.

반도체 인력난을 해결하려면 인재가 몰리는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와 대학원 정원, 교수진을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 소재 대학은 ‘인구 집중 유발 시설’로 분류돼 정원 확대가 불가능하다. 입학 정원과 별개로 선발할 수 있는 계약학과에 반도체 기업들이 목을 매는 이유다. 국내 반도체 인력은 올해부터 10년간 3만 명가량이 부족한데, 대학에서 배출하는 졸업생은 연간 650명에 불과하다. 여야 정치권이 합심해 만든 ‘반도체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조치법)에도 수도권대학 정원 확충 방안은 빠져 반쪽짜리 법안이 됐다.

대만은 올해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10% 늘렸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반도체 관련 학과 신입생을 1년에 두 번 뽑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도 인력 양성에 발 벗고 나섰지만, 한국만 낡은 수도권 규제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국가 전략자산이 된 반도체 확보전은 국가 대항전이 됐다. 경제와 안보 등 국가 사활이 걸린 문제보다 수도권 총량규제가 더 중요한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