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석열 정부, 돈풀기 공약 이행보다 '빅스텝 위기' 극복이 먼저다

빅스텝·양적긴축 결행에 따른 후폭풍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미국 증시는 ‘자이언트 스텝은 피했다’는 안도감에 반짝 강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불과 하루 만에 급락세로 반전했다. 테슬라와 아마존이 하루 만에 8%가량 폭락하는 등 시장 주도주들마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알리바바(중국)와 카카오(한국)도 지난 주말 증시에서 5% 넘게 폭락했다.

공포감이 커지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수직 상승해 ‘달러 독주’ 현상이 가속화했다. ‘수차례의 빅스텝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부각되며 달러가치(달러인덱스)는 20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빅스텝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26개월 만의 최고인 장중 1276원까지 치솟았다.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동반 둔화하는 와중에 원화가치 추락까지 덮치면 당면한 인플레이션 극복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상황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미국의 통화긴축은 세계 경제 회복에 직격탄이 돼 신흥국의 ‘디폴트 도미노’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신흥국의 자금 유출을 가속화할 것이고, 이를 막으려고 급하게 금리를 따라 올리면 경기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터키의 4월 물가상승률이 70%까지 폭등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우리 경제는 대외 환경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신흥국 수준은 넘어섰지만, 위기에는 신흥국 못지않게 취약하다. 외국인의 4월 아시아 주식 매도액 142억2000만달러 중 한국 주식이 35%(49억7000만달러)로 1위를 차지한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최근 두 달간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주식 매도 규모는 10조원을 넘어섰다. 금융시장의 이 같은 혼란은 실물경제 어려움으로 전이되고 있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자 4월에만 두산중공업 한화 한화솔루션 SK머티리얼즈 등이 회사채 발행을 보류하거나 연기했다. ‘3조 대어’ SK쉴더스는 지난 주말 상장 계획을 전격 철회해 IPO시장의 찬바람을 입증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주말 거시경제금융점검회의에서 “우리의 펀더멘털·대외 신인도·충격 대응 능력은 견조하다”는 뜬구름 같은 발언을 내놨다. 윤석열 정부의 갈팡질팡 행보도 걱정이다. “미국 경제마저 어찌 될지 모른다”는데 윤석열 인수위는 5년간 209조원을 펑펑 쓰는 ‘공약 완수’를 다짐했다. 지금은 표를 의식한 공약 이행을 접어놓고 ‘한국 경제 연착륙’을 위해 눈앞의 불똥을 막아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비상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