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의 치명적 실수가 만들어낸 참극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인플레 대응, 연착륙 다 틀려" 전직 동료까지 파월에 직격탄
4월 CPI 통해 '인플레 정점' 확인하나 주목 / 미 증시 주간전망
역사에 가정법 만큼 무의미한 게 없습니다. 그래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단서를 달면 조금 다릅니다. "만약 했더라면"을 읖조리는 것도 유의미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근시일내 또다시 비슷한 오판을 할 가능성이 크다면 '가정 시간'은 필수 과정이 돼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9개월 전으로 되돌려 보겠습니다. 당시 미 중앙은행(Fed)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했을까요.
지금은 흘러간 옛노래가 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Transitory)'이라거나 '실질적 추가 진전(substantial further progress)이 있기 전엔 움직이지 않는다'를 왜 그렇게 반복했을까요.

당시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파월은 틀렸습니다. 금리인상은 너무 늦었고 본인의 오판을 만회하기 위해 뒤늦게 과속을 하고 있습니다. 파월의 말과 달리 긴축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불신도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파월식 가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더라면'과 '중국이 제로 코로나를 고수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파월도 속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만 아니었어도 '모든 게 일시적이었을텐데'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핑계가 있을 수 있어도 프로는 결과로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과로 평가받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게 세계 경제 대통령의 숙명입니다.

그렇다면 파월이 오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파월 의장의 18번 중 하나인 '데이터에 기반한'(data dependent) 결정 과정이 어디선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선 전직 Fed 인사들까지 이런 경고음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오는 11일(현지시간) 발표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중심으로 파월의 오판 논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로 인해 불거질 '물가 정점론'과 '경기 연착륙론'도 살펴보겠습니다.

CPI와 PCE 중 무엇이 옳은가

파월의 오판을 불러 일으킨 데이터 중 하나가 물가 지표입니다. '신속함'의 대명사인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정확함'을 자랑하는 개인소비지출(PCE)이 양대 물가지표입니다.
CPI는 작고 빠른 선수입니다. 도시가구만 포함하는 대신 PCE보다 빨리 집계됩니다. 도시가구의 씀씀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의식주' 지출 변화를 빠르게 잡아낼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급등하고 있는 식료품과 주거비, 유가 급등도 상대적으로 잘 반영합니다.

이에 비해 PCE는 육중해 느린 선수입니다. 도시 뿐 아니라 농어촌 지역을 포함하고, 개인을 넘어 비영리단체, 기업의 의료보험 지출, 정부의 구매대행까지 망라합니다. 범위가 넓어 정확할 수 있지만 속도가 느립니다.Fed는 신속한 CPI보다 정확한 PCE를 신봉합니다. 하지만 속도가 주요한 물가급등기엔 잘못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Fed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근원 PCE엔 에너지와 식료품이 빠져 있습니다. 현재의 '푸틴발 인플레이션'과 '시진핑발 인플레이션'이 담겨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CPI와 PCE 구성 항목 중 최근 1년간 3% 또는 5% 이상 상승한 품목을 비교해봤더니 CPI가 훨씬 현실을 잘 반영했습니다. CPI에서 그 비율은 현재와 많이 비교되는 1980년대 초반 수준인 80% 달했습니다. PCE는 그 비중이 65%로 1990년대 초반에도 못미쳤습니다.
미키 레비 베렌버그 캐피탈마켓 수석이코노미스트는 "Fed가 PCE를 인플레이션 지표로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며 "Fed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주장했던 지난해 중반에 이미 인플레이션이 만연해 있었다"고 비판했습니다.

피터 아일랜드 보스턴칼리지 교수는 "Fed가 2020년 도입한 평균 인플레이션목표제 하에서 얼마나 높은 인플레이션을 언제까지 용인할 지 불명확했던 게 지난해 Fed가 인플레이션에 늦게 대응한 이유였다"고 평가했습니다. 평균 인플레 목표제는 평균 2% 물가 상승을 목표로 해서 결과적으로 일정 기간 2% 물가 상승도 용인해 지난해 Fed의 인플레이션 대응이 늦어졌다는 설명입니다.

CPI 보고 '인플레 정점' 확신할 수 있나

물가 급등기에 현실을 더 잘 설명하고 있는 CPI 4월 수치는 오는 11일 발표됩니다.
관심은 물가상승률이 정점에 도달한 게 맞느냐는 '인플레 피크아웃론'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집계한 전문가 4월 CPI 예상치는 지난해 동기 대비 8.1% 상승입니다. 전달 기록한 1981년 12월 이후 최고치인 8.5% 상승에서 낮아진 수치입니다. 4월의 전월 대비 상승률도 0.2%로 전달의 1.2%보다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4월 근원 CPI도 6.0%로 전달의 6.5%에 비해 떨어졌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현실 설명력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이미 근원 PCE는 석달 가량 안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치가 이렇다면 인플레 피크론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3%가 넘은 미 국채 10년물 금리도 다소 떨어져 증시에 호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일시적이냐 추세적이냐는 것입니다. 1분기 정점론이 맞다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감이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상승세가 주춤한 것이지 물가상승률이 확 내려가거나 인플레이션이 끝난 게 아닙니다.
파월 의장도 5월 FOMC 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하락하지는 않고 평평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 번의 데이터를 보고 모든 걸 판단하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파월 의장도 "한 달은 너무 짧고 근원 인플레이션이 두 달 정도 조금 낮아졌지만 그것으로 안심할 수 없다"며 "인플레이션이 실제 통제되면 다시 25bp 인상으로 돌아갈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응답하라 1994' 외치는 파월...'준(準) 소프트랜딩'이라도 가능?

파월의 뒤늦은 과속이 경기침체를 불러일으킬 지 여부도 관심입니다. 파월 의장과 재닛 옐런 같은 정책 집행자 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Fed의 긴축정책 후 경기침체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도 파월은 아니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응답하라 1994'를 외치고 있습니다. 1994년과 1984년, 1965년엔 금리를 올려도 오히려 경기가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근거를 댑니다. 그러면서 최근엔 'softish'라는 말을 가지고 와 '준(準) 연착륙론(softish landing)'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정책 집행자 외에 UBS나 소시에떼제너럴(SG) 같은 곳에서 '소프트 랜딩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Fed 출신들 사이에서도 연착륙에 대한 회의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Fed에서 파월과 함께 일했던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은 총재가 대표적입니다.

더들리 총재는 "Fed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데 너무 오래 기다렸고 과거 Fed가 실업률을 끌어올릴 때마다 경기침체에 빠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Fed가 연착륙에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생각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제프리 래커 전 리치먼드 연은총재와 찰스 플로서 전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도 경기 연착륙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습니다.

제2의 '자이언트 스텝 쇼크'는 없나

그렇다면 파월을 제외한 현재 Fed 인사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파월처럼 희망회로를 돌릴까요. 아니면 반대 편에 설까요.
올해 FOMC 표결권이 있는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층 총재가 이번주 선봉에 섭니다. 그는 9일, 10일, 11일까지 3일 연속 공개석상에서 발언을 합니다.
10일은 'Fed 데이'입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 톰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 등이 연설을 합니다. 12일엔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가 발언을 합니다.
항상 '자이언트 스텝' 같은 충격 발언으로 시장에 쇼크를 줬던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 루이스 연은 총재는 현재까지 연설 일정을 잡지 않았습니다. 올해 FOMC 표결권이 있는 불러드 총재는 3월 FOMC 때 유일하게 25bp 인상에 반대했지만 5월 FOMC에서 50bp 인상에 찬성했습니다.

변치 않는 인플레에 대한 '푸·시 압력'

인플레이션에 대한 푸틴과 시진핑의 '푸·시 압력'도 관건입니다.
9일은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를 선포하고 싶겠지만 '정신승리' 선언 외에 승리 선포는 쉽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공식 언급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습니다. 리스크가 너무 큰 데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전장 상황은 최악을 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뿐인 승리라도 마리우폴에서 퍼레이드를 한다 하고 돈바스 북부 쪽 하르키우와 루한스크 사이에 있는 지역에서 승리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오데사와 미콜라이우 등을 차지해 우크라이나 해안선을 죄다 점령하고 싶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압도적일 것으로 믿었던 해상전에서도 우크라이나에 힘을 못쓰고 있습니다.

지리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푸틴은 국가 총동원령이나 '준 총동원령'을 선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맞서 우크라이나는 크름반도(크림반도)까지 수복하겠다며 우크라이나 내륙과 크름반도를 잇는 다리를 폭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키이우 성지순례'를 더욱 강화할 수 있습니다. 질 바이든 대통령 영부인과 국무 국방 장관에 하원의장까지 미국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만 남았습니다. 이런 정치적 군사적 대립 속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초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 봉쇄령도 장기전 양상입니다. 아시안 게임까지 연기하면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모든 게 장기전으로 가더라도 희망회로를 돌릴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정점 부근에 왔고 악재란 악재는 다 노출됐으며 더 이상 나빠질 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닥론'의 근거입니다. 하지만 '지하실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긴축의 초입인 데다 노동시장은 여전히 빡빡해 임금상승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경기침체는 언제 와서 얼마나 오래갈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닥론'과 '지하실론'의 팽팽한 대결이 어디로 기울 지 이번 주에 조금이라도 가늠해볼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