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에 갇힌 韓외교…이젠 '글로벌전략' 수립할 때 [백우열의 융복합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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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 10위 한국, 英·佛급 중견선진국이지만한국은 글로벌 전략이 없다. 제국, 패권국, 지역 강국으로서의 글로벌 전략 말이다. 동북아시아 지역을 넘어 글로벌 수준에서 한국은 상대적 국가 역량 잉여에 기초한 완전히 다른 레벨의 국가가 된다. 이를 미국과 서구에서 먼저 인식하며 한국을 글로벌 수준의 ‘어른들의 게임(big boys’ game)’에 끼워주기 시작했다. 유럽,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남아시아는 어떻게 한국을 인식하는가? 이러한 냉정한 인식에 기반한 한국의 글로벌 전략 수립은 윤석열 신정부의 사명이자 새로운 국가 프로토타입의 가장 핵심적인 축이다.
‘한반도 둘러싼 4강’ 프레임에 오래도록 갇혀
우리 스스로 과소평가…지역 전략에 머물러
美·유럽, 한국을 ‘어른들의 게임’ 끼워주기 시작
세계 이슈 함께 논의할 ‘그들의 일원’으로 평가
尹정부 외교, 동북아 벗어나 글로벌 시야 갖길
‘세계 중추 국가’ 한국은 글로벌 전략이 없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중심으로 안철수 전 인수위원장이 주도해 국정과제 110개를 수립했고 향후 5년간 그 실현을 위해 매진하게 된다. 여러 논란을 뒤로하고 새로운 용산 ‘국민의 집’에서 한숨을 돌리며 의욕에 넘쳐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시대적 사명을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문명사의 변혁기를 맞아 대한민국은 국민의 역량과 잠재력을 결집해 국가경쟁력을 회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함’이라고 규정했다. 대략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세부 국정과제를 톺아보면 2020년대 글로벌 변동, 특히 혁신 과학기술의 전략적 중요성 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만 핵심 개념 하나가 빠져 있다. ‘글로벌 중추 국가’ 한국의 글로벌 전략이 없다.저 드높은 사명을 달성한다는 의미는 글로벌 수준에서 인정받는 국가 역량을 갖추고, 이를 현실에 투사할 수 있는 글로벌 전략을 창조하고 성숙시켜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한다는 뜻이다. 어느 정권이든 대통령 선거 과정과 집권 초기에 ‘한국의 위기’를 부르짖었고 대부분 사실이었다. 2022년 지금도 한국은 위기다. 그것도 문명사적인 변혁기 아래의 위기. ‘미·중 패권경쟁 격화, 3년째 이어지는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지식 정보화의 물결’ 현상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기회이자 가면을 쓴 축복(blessing in disguise)으로도 볼 수 있지만 아무튼 위기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중견 선진국이다. 프랑스, 영국, 독일, 호주, 그리고 일본 등과 비슷한 수준의 국가 역량을 지녔다. 패권국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이들이 소위 주요국이다. 2021년 기준 전 세계 국가 중 한국의 통합 국가 역량은 10위 정도로 경제력 10위, 군사력 6위, 정치영향력 11위, 과학기술력 7위, 문화력은 12위 수준이다.우리는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기보다 이미 중견급 선진국으로서 그 위상과 위치를 공고화해야 한다. 위의 비교 대상 국가들은 길게는 수세기, 짧게는 수십 년 동안 그 위상을 유지한 선진국이다. 한반도를 포함해 세계를 지배하고 위협했던 제국과 준제국이다. 유럽, 동아시아 등 각국이 위치한 지역을 넘어 글로벌 수준에서 사고하며 전략을 수립하고 정책을 펼친다. 이것이 거의 DNA 수준으로 국가 운영에 박혀 있다. 한국은 긍정적 부정적 의미에서 제국이 돼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이들과 같은 시야, 분석력, 인식력, 전략 마인드가 결여돼 있다. 그러니 글로벌 전략도 없다. 여전히 급급하게 대응만 하고 질질 끌려다닌다. 야심 찬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중추 국가’ 국정과제에서도 안 보인다. 이게 향후 5년, 10년, 20년 다가올 진짜 위기다.
축소 지향적인 한국의 외교 전략
한국의 글로벌 전략, 즉 한국만의 글로벌 세계관 구축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스스로에 대한 과소평가다. 여전히 한국의 외교 전략은 축소 지향적이다. 이번 글로벌 중추 국가 국정과제에서도 그대로 동북아시아 4강 그리고 북한 중심 관점이 드러난다. 이는 우리가 인식하는 국가 역량의 두 얼굴에 기인한다. 세계 10위 수준의 국가 역량을 어디에 위치시키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식을 하게 된다.즉, 동북아 지역적 수준에서의 상대적 국가 역량 부족과 글로벌 수준에서의 상대적 국가 역량 잉여의 괴리 혹은 차이다. 우리가 평생 지겹게 들어온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즉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중 현재 패권경쟁을 본격화한 미국과 중국은 세계 1, 2위의 국가 역량을 지녔고, 상당히 쇠락하고 있지만 일본도 세계 5~7위권에 자리해 있다. 그리고 현재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핵군사력과 에너지 자원에 기반해 미국에 도전하고 있는 10위권 밖의 광대한 러시아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과 비교할 때 한국은 엄청난 진보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국가 역량이 부족해 동북아의 참호 속에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인식 하의 외교 세계관은 이 좁은 참호 속에서 쏟아지는 포탄들을 피하는 전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북한(핵)이 가미되면 한국은 옴짝달싹 못 한다. 지역적 수준의 인식이고 대다수 한국 엘리트와 시민의 인식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글로벌 중추 국가는 수사에 불과하다.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을 넘어 글로벌 수준에서 한국은 상대적 국가 역량의 잉여라는 인식 위에 탄탄히 기초한 완전히 다른 레벨의 국가가 된다. 한국은 중견 선진국이다. 유럽에 있다면 프랑스, 영국급이다. 북미와 동북아를 제외한 지역에 있다면 최소 지역 강국, 최대 지역 패권국급이다. 그것도 2020년대 혁신 과학기술 기반의 초연결, 최근 주춤하지만 극단적인 세계화, 그리고 현재까지 최선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 가치·규범 주도의 과학기술, 경제, 정치, 군사, 문화 환경의 최적 시공간에서다. 한국은 세계의 미래를 제시하고 이끌어갈 한 축으로 기능해야 하는 국가로 인식될 수 있다. 아니 이미 한국은 그렇게 주요국들에 인식되고 있다. 한국의 주춤거리는 국가 외교 전략 리더들은 긴가민가할 뿐이고 한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한반도를 둘러싼 4강’ 프레임 세뇌의 족쇄에 얽혀 있어 꼼짝달싹 못 한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편입
이 같은 글로벌 수준의 국가 역량 잉여 국가 한국에 대한 인식은 미국과 서구 주요국이 우리보다 먼저였다. 이들도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을 동북아 지역 수준에서만 취급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들어 위에서 언급한 한국의 경제, 과학기술, 군사, 문화, 정치체제, 경쟁력의 통합 국가 역량을 글로벌 수준, 제국의 시각에서 재평가하면서 한국은 그들과 세계 주요 이슈를 함께 논하고 다루며, 의무와 권리를 공유할 수 있는 그리고 공유해야만 하는 국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에 상응해 지역을 넘어선 글로벌 사회에서의 위상과 위치를 한국에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일원을 받아들이고자 한다.이들은 한국이 더는 동북아에 묶여 있어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한다. 서북유럽과 오세아니아 최고 정책결정자들이 서울로 몰려온다. 일본의 보완재이자 대체재인 한국과 연계·연대하기 위해서다. 미국과 서구는 한국을 G7+와 D10(민주주의 10개국)과 같은 그들의 세계관을 실현하는 그룹의 일원이 될 자격을 인정한다. 그들의 인식에서 한국은 이미 ‘그들의 일원(one of them)’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의 글로벌 전략에 상응하는 한국의 글로벌 전략이 무엇인지 묻는다. 미국은 이미 한국의 ‘신남방정책’에 주목해 자신들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동일선상에서 양 전략에 관한 협력 합의서를 작성했다. 신·구 제국들은 다르다. 한국 자신보다 먼저 한국의 ‘쓸모’를 인식하고 동북아 지역의 상대적 국가 역량 부족의 프레임을 깨버렸다. 한국은 무섭고 부담스럽지만 신난다.이미 서구 주요국 그룹의 일원인 일본은 한국의 국가 역량 재평가에 당황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 상당수 경제 및 과학기술 분야, 국가경쟁력 분야에서도 일본을 따라잡는 수준이 아나라 앞지르고 있는 상황이 당혹스럽다. 근본적으로 일본은 한국의 국가 역량이 지역을 넘어 글로벌 수준에서 일본의 보완재·대체재로 커질 것임을 예측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이 인정해달라 조른 것이 아니고 그들이 최고선으로 여기는 미국과 서구 국가들이 먼저 한 것이다. 일본의 주류 국가 리더십인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자민당 보수 세력이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양국 국가 리더십이 현명하게 다루지 못한 불행한 과거사 문제로 인한 깊은 갈등의 수면 밑에 자리한 더 큰 폭발적 이슈다. ‘이기고 싶은 자와 지고 싶지 않은 자와의 갈등’으로 묘사되며 일본 외교경제 전문가들이 비공개 석상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일종의 부메랑 효과다. 미 서구의 인식 변화가 일본에 돌아와 들이친 격이다. 일본도 이제 한국을 달리 본다. 질시와 경계 그리고 기대가 공존하는 눈빛으로.
이들과 달리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국가 역량을 ‘한반도를 둘러싼 4강’ 프레임으로 인식하고 또는 인식하고 싶어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요즘 가장 반대하는 ‘냉전적 인식’이다. 위의 국가들과 달리 한국을 여전히 대국 중국 주변의 쓸모 있는 소국 정도로 인식한다. 한국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정치적 역량 강화와 이로 인한 지역, 글로벌 수준의 위상 및 영향력 확장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충분히 해 왔고 그에 맞춰 한국의 대중국 외교는 적절히 변화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수교 이후 30년간 한국이 성취해 온 세계 10위의 통합 국가 역량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자 한다. 한국이 선진 경제, 민주정치체제 그리고 대중문화의 보편성을 지닌 중견 선진국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일본보다 더하다. 이러한 대한국 인식은 동북아 지역의 상대적 국가 역량 차이에만 매몰돼 양국 관계의 상호 이해와 균형점을 찾기 어려워지는 큰 이유다. 양국의 국가 역량에 따른 지역 수준과 글로벌 수준의 역학과 레버리지 차이를 인식해야 하지만 여전히 ‘대국-소국’ 놀이만 하고 싶어 한다. 오히려 북한을 레버리지로 쓰려는 전략을 강화한다. 게다가 중국은 한국의 선제적 제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글로벌 전략 일대일로를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적극적으로 연계하고자 하지 않았다.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중국은 한국에 그냥 여기, 동북아에만 머무르라고 하고 있다. 이래서는 한국이 균형을 잡기 어렵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는 한국의 부상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국가 역량에 대한 재평가·인식 작업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들은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 전략의 핵심 시공간에 위치해 있다. 동남아 10개국이 아세안이라는 하나의 지역공동체로서 미국과 중국의 블록화에 저항하지만 안타깝게도 글로벌 수준의 국가 역량을 보유한 국가가 아직 없다. 일본에 더해 한국의 국가 역량 투사가 매우 쓸모 있는 전략적 대체 옵션이다. 위의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이들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위험하지 않은 여러모로 쓸모 있는 국가로 인식된다. 남아시아의 인도와 다른 국가들도 끊임없이 한국의 글로벌 국가 역량을 활용하고자 한다. 신남방정책의 공헌이 크다. 미심쩍어하던 이들의 대한국 인식이 바뀌고 있다. 물론 미국과 서구의 전향적인 대한국 인식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尹 대통령, 5년 넘어 10년·20년 ‘번영전략’ 세워야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국가 역량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향후 5년간 어찌 됐든 그는 외교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외교 경험 부족은 빠른 습득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 학습 과정에서 글로벌 수준에서의 국가 역량 잉여를 확고히 인식하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미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수준에서 국가 역량 부족은 한국의 대다수 엘리트와 같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정 청사진에서 글로벌 수준의 과학기술안보와 경제안보를 적절하게 제시했다. 이러한 전략적 방향성에 글로벌 외교전략과 정책이 결합되면 새로운 국가 운영 프로토타입의 한 축이 창조된다. 새 정부가 규정한 또는 직면한 사명을 다르게 표현하면 윤석열 정부의 5년을 넘어 10년, 20년 한국 생존·번영·주도의 도구상자(survival toolkit) 창조다. 매우 무거운 임무다. 방어적·수동적인 시각에서 봐도 글로벌 수준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게임’에 이미 한국은 진입했다. 들어가기 싫어도 들어가야 하는 세계 환경이다.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박고 모른 척한다고 타조에게 다가오는 사자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다.■ 백우열은혁신 과학 시대의 정치적 신구 난제에 천착하는 융복합정치학자다. 연세대, 홍콩시립대, 미국 UCLA에서 비교정치, 국제정치, 정치사상을 공부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세대 통일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외교부, 신남방위원회, 국회 등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의 상호작용 관점에서 아시아와 세계의 민주주의 및 독재 정치체제, 정치안보와 경제안보, 그리고 하드·소프트·스마트파워와 공공외교를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