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 공대 박사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투자로 이름 날린 비결 [황정수의 인(人) 실리콘밸리]

(20) 김동수 LG테크놀로지벤처스 대표(CEO)

연구원 출신 벤처캐피털리스트
반도체 스타트업 투자로 명성

기술 전문성은 기본
스타트업 이해 중요
"투자한 업체와 함께 성장해야"

LG테크놀로지벤처스 초대 CEO
업계 톱 수준 회사로 육성
김동수 LG테크놀로지벤처스 대표
김동수 LG테크놀로지벤처스 대표(CEO)는 실리콘밸리 한국인 동년배 사이에서 '김 대표'가 아닌 '김 박사'로 불린다. 미국 명문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따고 반도체 스타트업 투자로 이름을 날린 그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의미다. 김 대표가 투자한 퓨어스토리지(SSD 솔루션), 인프리아(EUV 노광장비용 포토레지스트) 등의 업체들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렸다. 인프리아는 2019년 일본의 포토레지스트 수출 규제 때 한국 산업의 방패 역할도 했다.

김 대표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전문성만큼이나 훌륭한 게 그의 성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 대표는 경험, 노하우, 지식을 타인과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 후배는 물론 실리콘밸리 진출을 모색하는 경쟁기업 사람들의 미팅 요청도 흔쾌히 수락한다. '먼저 손길을 내밀어야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를 '실리콘밸리의 문화'라고 표현했다.최근 김 대표를 만나 벤처캐피털리스트로서의 성공 비결을 물었다. 그는 "전문성, 노하우만큼 중요한 게 상대방에 대한 이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종종 스타트업 입장에 서본다고 한다. '왜 이렇게 사업을 못해'가 아닌 '어떻게 도와줄까'를 고민하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투자하고 끝'이 아니라 투자한 회사를 함께 키우는 게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중요한 덕목이란 뜻이다.

창립 4주년을 맞은 LG테크놀로지벤처스 경영과 관련해서도 김 대표는 직원들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좋은 기업 문화가 뿌리내려야 회사가 성과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LG벤처스는 LG그룹 신사업 발굴의 첨병 역할을 하는 핵심 계열사다. 김 대표가 초대 CEO를 맡아 업계 '톱' 수준의 기업형벤처캐피털(CVC)로 키웠다. 그는 "직원들이 많이 배우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며 "인재들이 오고 싶어하는 회사가 돼야 성과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람, 신기술 접하는 게 좋다" 연구원 입사 후 벤처 투자에 관심

▶대학에서 어떤 학문을 전공하셨나요
“칼텍(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 갔습니다. 학교가 굉장히 특이했습니다. 공학을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모인 학교입니다. 입학 동기가 250명인데 졸업할 때 200명이 남더라고요. 학교가 굉장히 터프했죠. 열심히해서 상 받고 졸업했고 프린스턴 석박사 통합 과정에 장학금 받고 들어갔습니다.”▶첫 사회생활을 삼성전자에서 시작하셨더라고요
“1997년 병역특례 때문에 연구원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광사업부에서 광통신 소자 쪽을 담당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광통신 사업을 접으면서 통신연구소 내 신사업 발굴하는 태스크포스에 들어가게됐습니다. 이 때 삼성전자 벤처투자팀이랑 함께 일하면서 ‘투자’ 업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벤처투자팀의 어떤 점이 좋아보였나요
“새로운 기술, 사업모델을 접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죠. 투자업체가 잘 됐을 때 성취감도 크고요.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결국 기회가 와서 2005년에 벤처투자팀으로 갔습니다.”
김동수 LG테크놀로지벤처스 대표
▶경력을 보니 중간에 한 번 삼성을 나오셨더라고요
“조직개편이 있었습니다. 사내 벤처투자팀이 삼성벤처투자로 합쳐졌습니다. 삼성벤처로 가고 싶었는데 ‘박사 출신이 왜 벤처투자로 가려고하냐. 기획업무를 하라’는 윗 분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8년에 회사를 나와 투자은행 업무를 하는 부티크에 들어갔습니다.

"투자로 끝을 보겠다"...삼성 퇴사하고 부티크로 이직

▶부티크에선 어떤 업무를 주로 하셨어요
“10명 남짓한 회사였는데 제가 넘버 2로 갔습니다. 영업부터 투자, 직원관리 등 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건 ‘돈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체감하게 됐습니다. 내가 1억을 받으려면 회사엔 적어도 순이익 3억은 남겨줘야하고, 당연히 매출 기여는 더 해야하는 겁니다. 대기업에만 있었다면 몰랐겠죠.”

▶그 중에 어떤 경험이 가장 도움이 되던가요
“프로젝트를 따는 것, 돈을 벌어본 경험입니다. 서비스를 팔아보는 경험은 정말 소중한겁니다. 여기저기 ‘콜드콜’ 하고, 찾아가서 설득하고 좌절하고 느끼는 게 많았습니다.”

▶다시 벤처투자업계로 가게 된 계기는요
“부티크에서 일하면서도 진짜 하고 싶은 건 ‘벤처캐피털’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운 좋게도 ‘삼성벤처투자 미국(실리콘밸리) 사무소에 관심이 있냐’는 오퍼가 왔습니다. 그래서 조인했죠. 그 이후로 계속 실리콘밸리에서 벤처투자를 하고 있습니다.▶삼성벤처투자는 생활은 즐거움의 연속이었겠네요
“네 처음엔 너무 좋았습니다. 허니문 기간이 지나면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느끼게됐습니다. 친하지 않으면 다른 VC들이 중요한 딜에 안 끼워 주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이메일을 쓰기도 했고요, 네트워킹 이벤트 가서 열심히 사람들 만났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쌓이게 됐습니다. 특히 인텔캐피털하고도 함께 일을 자주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2017년 초에 실리콘밸리 지사장이 됐습니다. 보스턴, 런던, 텔아비브 지사를 함께 책임졌습니다.”

▶원래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스타일이신가요
“사실 말을 못 걸고 그랬어요. 그런데 부티크에서 일할 때 트레이닝이 됐습니다. 실리콘밸리 와서도 VC들한테도 먼저 다가서서 말을 걸면서 극복을 한 겁니다. 지금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첫 투자 실패가 교훈으로..."기술력과 시장 성장성 동시에 봐야"

▶첫 투자건이 궁금합니다
“사이빔(SIBEAM)이란 업체입니다. HDMI를 무선으로 해보겠다는 스타트업이었습니다. UC버클리 교수가 창업한 회사였습니다. 제가 기술자 출신이잖아요. 기술이 정말 좋아보였습니다. 윗분들을 설득해서 투자를 했는데, 가격이 문제였습니다. HDMI 케이블 가격은 계속 내려가는 데 이 회사는 무선으로 하려다보니까 제품 가격을 30달러 밑으로 내릴 수가 없었죠. 결국 잘 안 됐습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첫 투자는 못 잊는다고 하던데요. 배운 게 많았을 것 같습니다
“잘 모르고 사랑에 빠지는 게 첫사랑이잖아요. 사이빔에도 분명 장점 뿐만이 아니라 단점도 있었을텐데, 단점은 잘 안 보였어요. 이 때 배운 건 ‘팀이 좋고 기술이 좋아도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벤처투자 경험이 쌓이면 스타트업의 단점만 보이는 건 아닌가요
“처음엔 다 좋아보이다가 나중엔 모든 것들이 눈에 안 차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단점과 장점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려면 4~5년 정도 필요합니다.”
김동수 LG테크놀로지벤처스 대표
▶투자를 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남들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믿음을 갖고 투자를 하고 그 기업이 성공했을 때입니다.”

▶사례가 있다면요
“포토레지스트 업체 중에 인프리아(INPRIA)가 있습니다. EUV(극자외선) 노광장비용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하는 업체였죠. 2013년에 만났는데 당시 ‘EUV 되겠어?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JSR이 다 잡고 있는데?’ 이런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 때 기업가치가 800만달러였는데 아무도 투자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땐 인프리아는 기술이 달랐고 접근 방법이 달랐습니다. 연구소에서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확신을 갖고 투자를 했어요.”

▶인프리아는 일본의 포토레지스트 수출 규제 때도 언급이 많이 된 기업인데요
“네. 그렇습니다. 처음 몇 년은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믿고 투자를 했고, 결국 인프리아의 포토레지스트가 공정에 투입됐습니다. 결국 JSR이 5억달러에 인수를 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인프리아 경영진이 고마워했겠네요
“사장이랑 친했습니다. 제가 이사회에 들어가서 조언도 많이 해줬습니다. 얼마 전에 연락이 왔는데, 처음 투자받았을 때 정말 고마웠다고 하더라고요. JSR에 인수됐을 때도 연락이 왔는데 뿌듯했습니다. 크게 봐서는 회사 수익률 향상에도 도움이 된 것이고 좀 더 크게는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에도 역할을 한겁니다.”

벤처투자로 한국 반도체 소부장 발전에 기여

▶대표님의 전공이나 경력을 감안하면 주로 반도체 업종에 투자했을 것 같습니다
“네 그중에서도 제가 집중적으로 많이 투자했던 게 SSD 시장을 키울 수 있는 기업들입니다. 삼성전자가 ‘무어의 법칙’을 실현하는 데 도움되는 투자를 했습니다. 주로 지금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어떤 SSD 기업이 기억에 남나요
“퓨어스토리지라고 데이터센터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를 묶어서 만드는 곳입니다. SSD에 소프트웨어를 넣어서 파는 곳입니다. 퓨어스토리지가 당시에 엄청나게 공격적으로 투자를 해서 ‘이게 될까’란 걱정도 했는데, SSD 시장이 커지니까 되더라고요. ‘빵빵한’ 투자자들도 많았고요. 그래서 좋은 사람 뽑아서 계속 하니까 결국 기업공개(IPO)까지 가고 순이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0배 이상 수익을 냈습니다.”

▶역시 시장이 중요하네요
“네 거기에 실리콘밸리의 힘이 더해진거죠. 리소스를 과감하게 투입해서 성장을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앞서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장 모델은 한국에서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긴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는 주변 활용 잘 해야"

▶평소 투자 받는 기업의 입장도 이해해야한다는 말씀을 자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 나라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훈련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것을 보더라도 여러 가지 시각에서 살피고 이해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이런 겁니다. 그래서 투자할 때도 ‘투자 받는 사람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을 함께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면 투자를 할 때 어떤 도움이 되나요
“협상의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 중에 나한테 덜 중요한 건 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필요한 걸 얻는겁니다. 그리고 성장하는 스타트업도 어려운 시기, 위기가 오거든요. ‘왜 이렇게 못해’가 아니라 ‘이래서 어렵겠구나, 이런 걸 도와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해외생활을 하면 실리콘밸리에서 네트워크를 쌓는 데 도움이 될까요
“워싱턴DC에 있는 유명한 사립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록펠러 가문 자제, 미국 상원의원 아들 등 잘나가는 백인들이 많았죠. 처음엔 위축이 됐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적응이 되더라고요. 수학이랑 과학 성적이 괜찮았습니다. 차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졸업식 스피치까지 했습니다. 어디서든 노력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가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 있다면 무엇일까요
“무엇이든 기초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기초과학 지식이 튼튼해야 여러가지 기술 분야의 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원리를 알면 빨리 배울 수 있는 겁니다. 인문학도 같은 개념이다. 벤처투자는 결국 사람에 투자를 하는 겁니다. 투자한 이후에도 여러 상황이 닥칩니다. 공동창업자 간 다툼 등이요. 그럴 때 인문학은 인간사의 원리를 생각하게 해주죠. 이게 일을 매니징할 때 도움이 됩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는 투자 대상 기업 ‘창업자’의 자질도 살펴야할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을 주로 보시나요
“똑똑한 건 기본입니다. 기술만 알고 시장에 대한 감이 없는 분들도 있고, 세일즈를 잘 하는 분도 있죠. 중요한 건 ‘주변의 자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입니다. 모르면 물어보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다른 CEO를 찾아가고요. 내가 안 가진 리소스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성공하더라고요. 그리고 실리콘밸리에선 물어보면 도와줍니다. 그리고 여러 명이 머리를 맞대면 생각하지 못한 걸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물어보는 게 두려워서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창업자의 자질을 파악하려면 질문을 잘해야할 것 같은데요. 질문 잘 하는 비결이 있다면요
“저는 원리에 대해서 많이 물어봅니다. ‘왜 이렇게 됐고 과정은 어땠는지’ 물어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성공인자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걸 활용해서 더 클 수 있습니다.”
김동수 LG테크놀로지벤처스 대표
▶네트워크의 노하우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협상과 같은 원리입니다. 무조건 많이 얻어내려고하면 상대방이 경계합니다. 사람마다 각자중요한 게 다릅니다. 이 사람한테 중요한 건 내주고, 나한테 중요하지만 그 사람한테는 덜 중요한 걸 협상을 해서 가져오는 게 진정한 ‘윈윈’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중요한 90%를 얻고 10%를 내주는겁니다. 네트워크도 그렇습니다. 큰 노력 안 들이고 도움 줄 수 있으면 해주는 게 맞습니다. 그렇게하다보면 ‘김동수랑 함께 하니까 얻는게 많네’ 이런 생각을 갖고 찾아옵니다. 제 나름의 노하우입니다. 그렇다고 ‘90% 양보하고 10%만 얻으면’ 내가 힘들죠. 서로 맞춰가는 게 중요합니다.”

세콰이어, A16Z가 큰 이유는 '투자 후 스타트업 관리'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될 질문인데요. 어떤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받는 게 좋은가요
“기술을 잘 알고 좋은 업체 발굴하는 건 기본이죠. 중요한 건 투자한 업체를 얼마나 많이 도와주고 육성시켜주고 기여할 수 있느냐입니다. 벤처투자는 진짜로 창업자를, 스타트업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톱 티어 VC인 세콰이어를 보면 ‘좀 뜨는 섹터’라고 하면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확 클 수 있게 지원을 합니다.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연결해주고 M&A 할 때도 도와줍니다.”

▶유명 VC 세콰이어의 성공비결 중 하나가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라는 거네요
“네 그렇게 하다보면 여러 가지 좋은 효과가 발생합니다. 투자한 회사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고요. 좋은 스타트업들이 ‘투자해달라’고 찾아옵니다. 다른 VC들도 좋은 업체에 투자할 때 함께 하려고 합니다. 결국 투자 뿐만 아니라 사후 관리도 중요합니다. 다른 유명 VC인 안드레센호로위츠가 확 큰 이유 중 하나가 ‘사업개발팀’이 강한 것입니다. 한국 VC들이 많이 발전했지만 이런 부분은 아직 약한 것 같습니다.”

▶한국 VC업계가 실리콘밸리에서 배워야할 게 무엇일까요
“한국 VC도 많이 발전해서 다른 데서 배울 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꼽는다면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봐야죠. 실리콘밸리엔 항상 꿈이 있고, 그 꿈이 투자자들한테 통했을 때는 일단 과감하게 리스크를 감수합니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처음에 봤을 때 누가 선뜻 투자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선 리스크를 안고 투자를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도와주는 문화’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생전 모르는 사람이 와서 물어봤을 때도 '노'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선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을 나누는 게 보통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솔직하게 제가 아는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그런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보는 산업 분야가 궁금합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이 결합된 분야입니다. 현재 산업용 로봇은 정해진 상황에서 특정 기능을 빠르게 하는데, 환경이 바뀌면 적응 기능이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서 기존에 입력된 볼트가 아니라 다른 볼트가 오면 작업을 못하는거죠. 이제는 AI가 결합이돼서 환경에 맞춰서 로봇이 작업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AI가 접목되면서 로봇이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LG벤처스 대표 맡은 이유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싶다"

▶삼성벤처투자 지사장까지 하실 정도로 잘 나갔는데, 왜 LG테크놀로지벤처스로 옮기셨나요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제가 운영을 맡아서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현지에서 운영을 해야 더 깊숙하게 알 수 있고 결정도 빠르게 내릴 수 있습니다. 또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좋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마지막으로 LG그룹 차원에서 강한 의욕을 보여줬습니다. 자율성을 주면서도 지원을 많이 해줬습닏나. 지금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 설립 이후 4년을 돌아보시면 어떻습니까
“처음엔 LG 계열사들의 신뢰를 얻는 것, 사람 뽑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강력하게 지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기대 이상으로 잘 되고 있습니다. 한국계 기업형벤처캐피털(CVC) 중에서 ‘톱’이라고 자부합니다.”

▶어떤 기업에 주로 투자하시나요
“그룹의 미래 기술 로드맵을 봤을 때 꼭 필요한 곳, 그리고 계열사와 협력할 수 있는 곳 등에 투자합니다.”

▶투자 성과는 어떤가요
“펀드 규모는 4억8000만달러 정도인데 70% 집행을 했습니다. 투자금을 회수한 기업이 하나 있는데 7배 수익을 냈습니다. Amwell, Arcellx(이상 헬스케어) SES AI(배터리) 같이 상장한 기업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회사로 LG벤처스를 키워가고 싶으세요
“실리콘밸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파악하려면 빠르게 성장하면서 돈을 버는 기업에 투자해야하거든요. 그래서 전략적 성과 뿐만 아니라 재무적 성과도 내려고 합니다. 두 번째로는 좋은 직원들이 와서 즐겁게 일하면서 성과를 내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오고 싶어하는 곳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많은 사람들이 LG벤처스에 오고 싶어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인재를 선호하세요
“투자팀은 현지에서 뽑습니다. ‘톱 티어’ 인재를 뽑기 위해 인터뷰도 하고 발표도 시키는데,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고참급은 실적과 경험(트랙레코드), 그리고 네트워크가 있어야 합니다. 네트워크가 있어야 좋은 투자 대상을 소개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니어 직원을 뽑을 때는 사업과 기술을 다 아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기술을 빠르게 배울 수 있는 ‘패스트 러너(fast learner)’가 빨리 적응하더라고요. 공통적으론 ‘팀워크’도 중요합니다. 협업이 힘든 사람은 안 뽑으려고 합니다. 여러 명의 머리에서 나오는 결정이 혼자하는 것보다 좋습니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