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리코리쉬 피자', 캘리포니아 청춘의 뜨거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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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의 청춘 로맨스 영화청춘의 색깔은 오렌지와 블루 그 애매한 어딘가쯤일까. 한물 간 아역배우이면서 허황 된 꿈을 꾸는 15살 소년 개리. 다 큰 성인이지만 꿈과 목표 없이 졸업사진 촬영 도우미로 일하는 25살 알라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그리는 1980년대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여름날을 담은 영화 ‘리코리쉬 피자’다.‘마스터’ ‘데어 윌 비 블러드’ 등 인간 내면의 불완전성을 거침없이 파헤치는 드라마를 그렸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그가 이번엔 기존의 작품들과 결이 다른 청춘 로맨스 영화 ‘리코리쉬 피자’를 들고 왔다.어느날 개리는 졸업사진 촬영 도우미로 온 알라나에게 첫눈에 반한다. 거리낌 없이 데이트 신청을 하는 개리의 이유 모를 자신감에 못이겨 함께 저녁을 먹는 알라나. 개리의 “꿈이 뭐냐”는 질문에 쉽사리 답을 못하던 그녀는 얼떨결에 아역배우 개리의 매니저로 일하게 된다. 연기 재능보다 사업 수완에 더 몰두하는 개리는 물침대 판매부터 핀볼장까지 다양한 사업을 벌이게 된다. 개리가 점점 사업가로 성공할수록 위축되는 알라나는 배우 오디션을 보거나, 정치인을 돕는 자원봉사를 지원하는 등 스스로 일어서려 한다.카메라는 한곳에 고정되지 않은 채 불완전한 청춘들의 혼란한 마음을 쉴 새 없이 오간다. 푸르스름한 배경에 오렌지 불빛 사이를 걷는 그들을 정면이 아닌 비스듬히 비춘다. 기존 작품들이 현란하고 리듬감 있는 연출을 주로 했다면, 이번 영화는 좀 더 정적이고 고전미 넘치는 화법으로 바뀌었다. 감독은 전작들처럼 유사 가족 관계와 상처를 가진 캐릭터를 조명한다.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컬러 대비다. 개리가 타고 다니는 푸른색 자동차와 알라나가 운전하는 오렌지색 트럭처럼 영화 내내 오렌지와 푸른 색상을 대비시킨다. 아이디어와 의욕은 넘치지만 아직은 어설픈 풋내기 사업가 개리. 수시로 바뀌는 삶의 목적처럼 여전히 설익은 오렌지 같은 알라나. 화면에서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여름밤의 공기와 냄새까지 전해져 온다.
1980년대 청춘의 풋풋한 이야기 담아
‘리코리쉬 피자’의 단순 사전적인 뜻은 ‘감초 피자’라는 의미를 지녔지만, 이는 197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유명했던 레코드샵에서 따왔다. 레코드를 굽는 모양이 마치 피자를 만드는 모양 같다는 의미의 슬랭이다. 이름처럼 영화는 내내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노래들로 당시 캘리포니아의 분위기를 극대화 시킨다. 데이비드 보위의 ‘라이프 온 마스’, 도어스의 ‘피스 프로그’, 폴 매카트니와 윙스의 ‘렛 미 롤 잇’ 등 1960년대와 70년대를 주름잡은 명곡들이 등장한다.영화는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결말 없이 두 사람의 질주로 끝이 난다. 일부 ‘기승승승’인 영화다라는 비판도 있지만 감독은 이제 막 시작하는 청춘들에게 섣부른 이야기의 끝맺음을 내지 않은채 끝냈다. 2시간 동안 오일쇼크, 핀볼법 허용 등 1980년대 실제 일어난 사건들도 등장하지만, 그 시절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관객들에겐 크게 공감을 얻지는 못한다. 하지만 누구나 겪는 첫사랑의 감정은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공통의 울림을 준다.
‘리코리쉬 피자’는 제75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까지 3개의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