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대 출시 앞둔 '36살' 그랜저…장수 비결은? [車모저모]

신현아·유채영 기자의 차모저모 19화

그랜저가 7세대로 올해 하반기 돌아옵니다. 지난 11일 6세대 마지막 연식변경 모델이 출시됐죠. 고객 선호도가 높은 옵션이 기본화되면서 상품성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가격도 최대 200만원가량 올랐습니다. 7세대 출시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반도체 수급 문제로 출고가 오래 걸리는 상황에서 이 연식변경 모델을 구매하는 분들이 얼마나 될지 벌써 궁금해지네요.

그나저나 벌써 7세대라니…그랜저의 연륜이 새삼 느껴지는데요. 무려 36년 장수 모델입니다. 제 나이보다도 훨씬 많네요. 나이는 많지만 인기는 아직 어마어마합니다. 역대 최대 판매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요. 최근 5년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로 기록됐습니다. 올해 들어 세대 변경을 앞둔 데다 반도체 수급 이슈로 살짝 약발이 떨어지긴 했는데 그럼에도 국산 승용 부문 3위(올해 1~4월 판매량 기준·1만8151대)에 오르며 스테디셀러임도 입증했죠.

1986년 탄생 '그랜저', 대형차 시장 포문 열다

사진=한경DB
그랜저가 잘 팔리는 건 오늘내일 일이 아닙니다. 그랜저는 1986년 탄생한 1세대(L·1986~1992) 모델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잘 팔렸습니다. 당시 경제 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고급차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 컸는데요. 1986년 아시아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의전용 차량으로 사용되면서 더욱 판매에 속도가 붙습니다. 2세대 등장 전까지 9만2571대가 팔렸는데요. 당시 고급차 시장에서 점유율이 80%가 됐을 정도로 잘 나갔습니다.

근데 1세대 그랜저는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게 아닙니다. 현대차는 당시 고급차를 만들 기술력이 없었는데요. 그랜저 출시 전까지 판매하던 고급차 '그라나다'도 포드 독일법인으로부터 수입해 판매하던 차였죠. 그래서 현대차는 당시 기술력에서 앞서 있던 일본 자동차 회사 미쓰비시의 힘을 빌리기로 합니다. 디자인 외 파워트레인·섀시 등 주요 설계를 미쓰비시가 다 맡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대형 세단 개발을 위한 'L카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1986년 차가 출시됩니다.참고로 1세대 그랜저는 '각그랜저'로 알려져 있죠. 직선이 강조된 디자인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는데요. 최근 현대차는 헤리티지 시리즈의 일환으로 각그랜저를 전기차로 부활시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1세대 그랜저는 국산차 최초의 전륜구동 대형 세단인데요. 당시 승차감을 잡고자 '대형 세단 = 후륜구동'이라는 공식에 반대되는 흐름을 보여 화제가 됐죠.
2세대(LX·1992~1998) 모델은 1992년 출시됐습니다. 현대차는 1세대 그랜저의 성공 영광을 잇고자 다시 한번 미쓰비시의 손을 잡기로 합니다. 2세대는 좀 더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차'라는 인식이 강했는데요. '쇼퍼 드리븐' 성격이 강해서 기업 임원용 차로 많이 활용됐습니다. 부유층을 상대로 범행을 계획했던 범죄집단 지존파의 타깃 선정 기준도 그랜저였죠.

1세대와 달리 부드러운 곡선미가 두드러지는데요. 전장도 30cm가량 길어서 당시 판매되던 국산차 중 가장 컸다고 합니다. 또 국산차 최초로 전면 에어백이 장착된 상징적인 차입니다. 이외에도 '국내 최초' 수식어가 붙을 만한 획기적인 안전·편의 기능도 많이 들어갔고요. 지금으로 치면 제네시스 플래그십(기함) 세단 G90 정도의 최고급 차였던 거죠.

기함 자리 내려놓더니…판매 급증

이랬던 그랜저의 포지셔닝은 1998년 3세대(XG·1998~2005) 출시를 기점으로 바뀝니다. 크기가 줄고요. 디자인도 약간 젊어집니다. '쇼퍼 드리븐'에서 '오너 드리븐'으로 성격도 바뀌어요. 1999년 현대차가 그랜저의 상위 모델인 에쿠스를 내놨는데요. 이걸 염두하고 위치 조정을 한 것이었죠.

그렇게 3세대 그랜저는 더이상 회장님만의 차가 아닌 한층 대중적인 모델로 자리 잡습니다. 결과적으론 이게 판매량 급증의 계기가 됐고, 그랜저는 전성기를 맞게 됐죠. 총 31만1251대 팔렸는데요. 2세대 판매량도 16만4927대로 만만찮았는데 이보다 2배 더 팔린 겁니다. 무엇보다 3세대부턴 더 이상 일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또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했던 모델이 바로 3세대 그랜저입니다. 세대 변경을 거치면 거칠수록 그랜저는 점점 젊어집니다. 타깃 연령층도 그만큼 낮아지는데요. 광고에서도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2세대 모델 광고까지만 해도 중장년층이 성공하는 주체로 나왔다면 4세대(TG·2005~2011)부턴 40대 젊은 주인공이 성공을 외칩니다. 그만큼 고객 폭이 확대돼 판매량도 덩달아 증가하는데요. 독자 개발한 6단 변속기, 핸즈프리까지 각종 고급 기술과 성능까지 뒷받침되면서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타게 됩니다. 출시 다음 해인 2006년에는 연간으로 12만대 이상 팔려 처음으로 10만대 돌파에 성공합니다. 그렇게 총 40만6798대가 팔렸습니다.
5세대 그랜저
그랜저는 5세대(HG·2011~2016)에서 다시 한번 대변화를 거칩니다. 2015년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출범하면서 또 다시 이미지 변화와 함께 포지셔닝의 조정이 이뤄진 겁니다. 광고에서도 "다섯 번째이자 첫 번째 그랜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죠. 대형과 중형의 중간인 '준대형차'로 자리 잡은 것도 이때부터라고 보면 됩니다.

그랜저 최초로 직분사(GDI) 엔진도 이때 적용됐는데요. 이전까지만 해도 다중분사방식(MPI) 엔진을 사용했습니다. 또 하이브리드, 디젤 모델이 처음 나온 것도 5세대입니다. 선택지가 대폭 넓어지면서 판매량도 꾸준히 연간 10만대 이상 판매되기 시작합니다. 6세대 출시 전까지 판매량은 51만5142대로 집계됐습니다.

6세대 그랜저(IG·2016~)는 더 젊어지면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습니다. 더 대중화되면서 당시 30대 고객 유입이 크게 늘었는데요. 출시 이듬해인 2017년에는 국산차 판매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후에도 5년 연속 이 자리를 놓지 않으면서 국민차 반열에 올라서게 됩니다.

'부자' '성공'의 상징

6세대 그랜저 광고. 영상=현대차 유튜브
30여년 전의 플래그십 세단은 아니지만 그랜저라고 하면 '성공하면 타는 차'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 있죠.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4세대 그랜저 광고, 2009년)
A: "우리 이다음에 성공하면 뭐할까?" B: "그랜저 사야지" (6세대 그랜저 광고, 2019년)

그랜저 광고 속 대사인데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이 광고에도 그랜저를 '성공'에 빗대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가 바뀐 만큼 성공의 주체, 연령 등이 30년 전과 차이는 있습니다만, 그랜저는 여전히 '성공'을 상징합니다. 그랜저가 장수 모델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도 생각되는데요. 부드러운 승차감에 부족함 없는 성능, 그에 비해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까지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마음에 스며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연말 그랜저는 7세대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요. 신차 예상도 보신 분들은 다 아실 텐데, 디자인이 파격적으로 바뀌죠. 스타리아를 닮았다고 해서 '스타랜저' '그랜리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입니다. 전장은 기아 K8(5015mm) 수준으로 늘어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5m가 넘는다는 거죠. 아무래도 K8과 같은 3세대 플랫폼을 쓰기도 하고, 경쟁 모델인 K8에 대적해 베스트셀링카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현대차로선 사이즈를 키우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새단장한 그랜저가 또다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하고요. 기대도 됩니다.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였고, 차모저모 신현아였습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영상=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