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마르코스 대선 승리로 '마약과의 전쟁' 면죄부 얻나

가문 결합으로 당선에 절대적 기여…국내 재판 가능성 희박
마르코스, ICC 조사 반대…"필리핀 사법체계 관여 불가"
피해자 가족들, ICC에 조사 촉구…인권단체 "소송 준비"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자신의 가문이 지지한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마약과의 전쟁'에서 자행된 초법적 처형 등 불법 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얻을지 주목된다. AFP통신은 이번 대선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64) 전 상원의원이 승리하면서 두테르테가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해 재판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고 11일(현지시간)보도했다.

마르코스는 부통령 후보로 나선 두테르테의 딸인 사라(43) 다바오 시장과 러닝 메이트를 이뤄 출마해 이번 선거에서 당선됐다.

필리핀 정계에서는 마르코스 대선 승리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사라와의 '원팀' 구성을 꼽고 있다. 마스코스는 사라와 러닝 메이트를 이루면서 집권당인 PDP라반의 리더이자 대통령인 두테르테의 정치적 영향력과 기반을 토대로 대권을 쥔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마르코스가 취임 후에도 국정 운영 과정에서 두테르테 가문과의 공조가 필요한 만큼 전임자를 법정에 세울 공산은 극히 적다는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마르코스는 이미 대선 기간에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마약과의 전쟁 조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그는 "ICC는 관광 목적으로만 입국할 수 있다"면서 "필리핀의 사법체계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들어와 우리의 일을 대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필리핀 인권 감시 연구소의 카를로스 콘데는 "두테르테는 무사할 뿐 아니라 건드리기조차도 불가능할 것"이라면서 "뿐만 아니라 퇴임 후에도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테르테는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6년 7월부터 대대적인 마약 범죄 소탕을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6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인권 운동가들은 이 과정에서 필리핀 정부가 수천명에 달하는 마약 사용자와 판매자들을 임의로 처형했다면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필리핀 경찰은 용의자들이 무장한 상태에서 저항했기 때문에 무력 대응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맞서왔다.

이에 지난해 9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마약과의 전쟁을 반인륜 범죄로 규정하고 정식 조사에 나서겠다는 검사실의 요청을 승인했으나 같은해 11월 필리핀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사를 유예키로 결정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인권단체와 피해자 가족들은 ICC가 반드시 제대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2017년 당시 고교생인 조카를 잃은 랜디 델로스 산토스는 "피해 가족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ICC가 조사를 재개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인권단체인 카라파탄은 "두테르테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소송을 진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전쟁을 정당화하면서 퇴임 후에도 마약 범죄 근절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퇴임 후 계획을 설명하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마약상을 찾아내 쏴죽이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