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추기경 '외세와 결탁' 혐의 체포…바티칸 "우려"(종합)

보안국장 출신 행정장관 선출 직후 이뤄져
"홍콩의 충격적인 새로운 밑바닥…탄압 고조의 불길한 신호"
조셉 젠(90) 추기경이 홍콩국가보안법 상 외세와 결탁 혐의로 체포됐다. 이에 교황청은 우려를 표했고, 미국과 유럽연합(EU), 인권단체들은 일제히 비판했다.

홍콩 경찰은 11일 밤 45~90세의 남녀 각 2명씩을 외세와 결탁 혐의로 10일과 11일에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개별 용의자의 신상을 밝히지 않았으나 이들이 '612 인도주의지원기금'의 신탁관리자들이며 "외국 조직에 홍콩에 대한 제재를 촉구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혐의를 받고 있고 추가 체포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 언론은 체포된 이들이 젠 추기경과 마거릿 응(74) 전 입법회 의원, 가수 데니스 호(45), 후이포컹 전 링난대 교수이며 모두 밤사이 보석으로 석방됐다고 12일 전했다.

젠 추기경은 풀려나면서 지팡이에 의지해 경찰서에서 걸어나왔으며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는 아무말 없이 기다리던 승용차에 타고 현장을 떠났다.

2020년 6월 시행된 홍콩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지금껏 홍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70여명이 체포됐다.

서방에서는 홍콩국가보안법이 홍콩 반대진영을 탄압하기 위한 강력하고 모호한 법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중국과 홍콩 당국은 해당 법으로 홍콩이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았다고 주장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경찰의 체포 작전은 국가보안법의 강력한 지지자인 존 리 전 보안국장이 차기 홍콩행정장관으로 선출된 직후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지난 8일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차기 행정장관으로 당선된 존 리는 보안국장과 정무부총리를 거치면서 국가보안법을 적극 집행했다.

이에 그가 행정장관으로 오는 7월 1일 취임하면 홍콩의 공안정국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612 인도주의지원기금'은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기소 위기에 처하거나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2억4천300만 홍콩달러(약 396억원) 이상을 어려운 이들에게 지원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홍콩 당국이 기부자와 수령인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포함한 정보를 넘길 것을 요구한 직후 자진 해산했다.
젠 주교는 2006년 추기경으로 임명됐으며 3년 뒤 은퇴했다.

그는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반정부 시위,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시위 촛불 집회 등에 적극 참여하며 홍콩 민주 진영에서 목소리를 내왔고, 이로 인해 친중 진영의 공격을 받아왔다.

로이터 통신은 "젠 추기경은 중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중국 본토에서 일부 가톨릭 주교를 박해한 것을 포함해 시진핑 국가주석 아래 중국에서 권위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을 비판해 왔다"고 전했다.

이어 "홍콩은 오랜 기간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가톨릭 거점 중 하나로 중국 본토와 다른 지역의 가톨릭을 지원해 온 단체와 학자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리 행정장관 당선자도 모두 가톨릭 신자다.

교황청은 1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추기경 젠의 체포 소식을 우려 속에 접했고 상황을 극도로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과 홍콩 당국을 향해 "홍콩 지지자들을 겨냥하는 것을 중단하고 부당하게 구금되고 기소된 이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민주 활동가, 학자, 종교 지도자를 소위 국가보안법으로 체포함으로써 홍콩 당국은 반대파를 억누르고 보장된 권리와 자유를 약화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워싱턴의 한 행사에서 체포 관련 질문에 "나는 우리가 홍콩에서 시민사회를 압박하고 없애려는 조치들로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U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는 성명에서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과 홍콩 기본법에 보장된 기본적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중국 담당 마야 왕 선임연구원은 성명에서 "90세의 추기경을 평화로운 활동으로 체포한 것은 홍콩의 충격적인 새로운 밑바닥으로 지난 2년간 홍콩의 인권이 추락했음을 보여준다"며 "중국 정부가 전 보안장관 존 리를 새 홍콩 행정장관으로 축복한 지 며칠 만에 이뤄진 체포는 홍콩에서 탄압이 고조될 것이라는 불길한 신호"라고 비판했다. 국네앰네스티는 "이들 신탁관리자에 적용된 소위 '외세와 결탁' 혐의는 홍콩국가보안법의 모호함이 정치적 목적의 혹은 악의적인 체포를 위해 무기화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