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 거위고기와 '이것'을 먹으면 내옹이 생기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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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먼 옛날 한 마을에는 거위를 많이 길렀다. 그래서 다른 마을에 비해 거위고기를 먹을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식솔들이 많아 어쩌다 거위고기를 먹을 때면 물에 넣고 탕을 끓여 고기와 함께 그 물을 나눠마셨다.
거위는 오리고기와 약성이 비슷하다. 오리고기는 야압육(野鴨肉)이라고 하는데, 성질이 서늘하고 소화기를 보하고 기운을 도우며 위장의 기운을 고르게 한다. 거위고기도 마찬가지로 약성이 서늘하다. 반면에 닭고기는 기운이 따뜻하다. 그래서 거위고기나 오리고기는 열체질에 좋고, 닭고기는 냉체질에 알맞다.거위고기는 특히 흰 거위고기가 약이었는데, 흰 거위고기를 백아육(白鵝肉)이라고 불렀다. 마을의 오래된 의원은 의서를 펼쳐 마을 사람들에게 거위고기의 효능을 알렸다. “동의보감에는 백아육은 성질이 서늘하다고 해서 오장의 열을 풀고 갈증을 멈춰줍니다. 다만 삶아서 먹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요즘 숯불에 직접 구워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많은 사람이 나누어 먹기에 부족할뿐더러 숯불에 굽게 되면 장에 내옹(內癰)이 생길 터이니 주의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을 사람 중 의서를 많이 읽었던 한 노인이 물었다. “내옹(內癰)은 사기(邪氣)가 실하고 습열(濕熱)이 많은 사람에게 많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거위고기만 구워 먹을 때 생긴다는 말인가?”
의원이 답하기를 “내옹이란 장에 생긴 종기입니다. 어르신 말씀대로 정기가 허한 경우 사기(邪氣)가 뭉쳐서 장이 헐고 염증과 궤양을 일으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불에 구워서 태운 것을 많이 먹어도 장에 내옹이 잘 생깁니다. 필시 거위고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것이지요. 다만 요즘 우리 마을에 거위를 키우면서 거위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라고 하였다.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마을의 터줏대감은 거의 날마다 혼자서 거위 한 마리를 구워서 먹기를 벌써 1년이나 되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의원이 의서만 읽었지, 실력이 없네” “1년이나 구운 거위고기를 먹은 사람이 건강하기만 하구만”하며 서로 궁시렁대면서 일하기 바빠 각기 들로 흩어졌다.
의원은 당황스러웠다. 거의 1년 이상이나 거위를 불에 구워 먹었다면 반드시 내옹이 생기고도 남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을 찾아왔을 것이지만 그 터줏대감은 아직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을 자신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그 연유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날 밤 의원은 몰래 터줏대감의 집에 숨어 들어가 살펴보았다. 그날도 역시 터줏대감은 거위를 화롯불에 구워서 혼자서 한 마리를 다 먹었다. 거위는 바삭하게 구워졌고 몇 부위는 숯처럼 검었다. 의원은 저렇게 태워 먹는데, 내옹이 생기지 않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터줏대감은 구운 거위고기를 모두 먹고 나서 무언가 한 사발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다음 날도 확인해 본바 구운 거위고기를 먹고 나서 또다시 무슨 탕을 한 사발 들이키는 것이다.의원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례함을 무릅쓰고 터줏대감 앞에 나아가 여쭈었다. “어르신 도대체 그 탕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이 탕 말이요? 녹차인데, 뭐가 그리 궁금한 것이요”라고 했다. ‘아~ 녹차가 해독한 것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구운 고기를 날마다 드시고도 내옹이 없었고, 비만해지지 않으신 거로구나’ 의원은 자기 무릎을 탁하고 쳤다. 의원은 터줏대감의 건강관리법에 탄복하면서 감사 인사를 올리며 자리를 물러났다.
의원은 약방에 와서 호롱불을 밝히고 의서를 펼쳤다. ‘고다(苦茶, 녹차)는 염증을 제거하고 이뇨 작용이 있으면서 노폐물을 제거한다. 또한 굽거나 볶아서 먹고 생긴 독을 푼다. 오래 먹으면 몸의 기름을 제거해서 몸이 마르게 한다. 또한 많이 먹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의원은 그 부분에 붓두껍에 주사인주를 묻혀 각인해 놓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의원은 꿈속에서도 중얼거렸다. ‘녹차가 구운 고기의 독을 해독한 것이로구나....’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약초의 치험례를 바탕으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