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코인 루나·테라 폭락 쇼크…"가상화폐의 리먼사태 되나"(종합)

루나 119달러→12센트로…"루나 50% 할인 판매해 자금 확보 방침"
비트코인도 3만달러선 붕괴…금융시장 전반으로 불안감 확산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가 연일 폭락하면서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12일 가상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루나와 UST는 이날 한때 12센트, 26센트까지 각각 급락했다.

루나는 한국시간 오후 5시 4분 현재도 12센트대로 24시간 전보다 97.8% 떨어진 상태다.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spiral) 현상을 피하지 못하면서 UST가 폭락하고 루나도 97%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모든 것이 무너졌다"며 "UST가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세계에서 애정의 대상이었으나 죽음의 소용돌이로 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루나와 UST는 애플 엔지니어 출신인 30살 권도형 최고경영자(CEO)와 소셜커머스 티몬 창업자인 신현성 씨가 2018년 설립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하는 가상화폐다.

테라폼랩스 본사는 싱가포르에 있지만, 한국인 대표의 블록체인 기업이 발행한 코인이라는 점에서 국산 가상화폐인 이른바 '김치 코인'으로 분류됐다. 루나는 지난달 119달러까지 치솟으며 가상화폐 시가총액 순위 10위권 내에 들었지만, 최근 일주일 새 약 1천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UST는 한때 시총 규모가 180억달러(약 23조2천억원)로 스테이블 코인(달러 등 법정화폐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가상화폐) 가운데 3위에 달했다.

하지만 UST는 한국시간 오후 5시 7분 현재 시총이 약 73억달러로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뉴욕증시 추락이 가상화폐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상황에서 루나와 UST의 특이한 거래 알고리즘은 두 코인에 대한 '패닉 셀'(투매)을 촉발했다.

루나는 디파이 등에 쓰이는 스테이블 코인 UST를 뒷받침하는 용도로 발행되는 가상화폐다.

UST는 코인 1개당 가치가 1달러에 연동되도록 설계됐다.
문제는 최근 UST의 급락에서 시작됐다.

UST 시세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서 자매 코인인 루나가 급락하고 다시 두 코인의 가격 하락을 촉발하는 악순환인 '죽음의 소용돌이 현상'에 빠져든 것이다.

UST는 현금이나 국채 등 실제 안전자산을 담보로 하는 테더나 USDC 등 다른 스테이블 코인과 다른 알고리즘을 채택했다.

UST가 1달러 아래로 내려가면 루나 공급량을 늘리고, 1달러보다 높아지면 루나 공급량을 줄이는 등 루나를 이용해 UST 유동성을 조정하는 것이다.

UST 가격이 하락하면 투자자는 테라폼랩스에 UST를 예치하고 그 대신 1달러 가치 루나를 받는 차익 거래로 최대 20% 이익을 얻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UST 가격 하락 시 UST 유통량을 줄여 가격을 다시 올림으로써 그 가치를 1달러에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오로지 투자자들의 신뢰로만 유지되는 이 메커니즘은 최근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리서치업체 펀드스트랫은 "루나와 UST의 극적인 가격 하락은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증발해버릴 수 있는 죽음의 소용돌이"이라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UST와 루나 모델은 이 가상화폐를 지원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의지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다"고 꼬집었고, 블룸버그 통신은 "가상화폐 몽상"이라고 비판했다.

권 대표는 UST와 루나 폭락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UST를 담보로 15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조달에 나섰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테라폼랩스 측은 투자자들에게 루나를 현물 가격의 50%로 할인 판매함으로써 이 돈을 조달할 방침이지만, 시장에서는 가격이 급락하는 자산을 50% 할인가로 판다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또 UST 가격 방어에 충분한 양의 루나를 발행할 경우 루나 가치가 1천% 정도 희석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평가나 "모든 상황상 자산 가치가 '제로'를 향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번 사태는 가상화폐 시장의 최대 '블랙홀'로 자리 잡았다.

가상화폐 업계는 권 대표가 UST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 '루나파운데이션 가드'가 루나 가격 담보를 위해 수십억달러어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UST 유동성 공급을 위해 비트코인을 대량 처분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다.
루나·UST 폭락이 충격파를 던지면서 이날 비트코인 가격은 3만달러선이 무너져 한국시간 오후 5시 12분 현재 2만7천631달러를 나타내고 있다.

디파이 프로젝트와 연관된 가상화폐 아발란체(37%↓), 솔라나(33%↓) 등도 일제히 폭락했다.

테더 등 다른 스테이블 코인은 자신들이 UST와 달리 실질 자산에 의해 담보되는 만큼 UST와 완전히 다른 자산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시아 증시에서는 가상화폐 관련주가 급락했으며, 코스닥 상장사인 우리기술투자는 이날 13.58% 떨어졌다.

또 이번 사태로 금융시장 투자심리가 흔들리면서 각국 중앙은행과 상장지수펀드, 뮤추얼펀드 등 유동성을 바탕으로 자산 가격 안정을 유지하려는 다수의 전통적 금융기관들에도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투자회사 파이퍼샌들러는 "시장이 UST의 상황에 겁을 먹고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그렇다'다"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mgnr는 "다른 가상화폐 업체들이 UST에 (구제금융을) 지원할 리스크를 떠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알고리즘의 안전성은 일종의 신뢰 게임인데, 그 신뢰가 무너지면 끝난 게임"이라고 분석했다.

CNBC 방송은 "가상화폐 매도 압박에 UST 가격이 무너졌고 시장에 더 큰 패닉을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외신은 루나·UST 폭락의 파장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비교하는 것이 시작됐다"며 "극단적으로 높은 레버리지와 물고 물리는 순환적 메커니즘 등 그림자 금융(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기관)의 특징을 UST 생태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UST의 추락이 가상화폐 시장에서 리먼브러더스 모멘텀이 되는가"라면서 "많은 투자자가 이제 거의 모든 돈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일부는 권 대표의 구제 패키지를 기다리지만, 다른 사람은 이 프로젝트에 전적으로 신뢰를 잃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