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동결 덫에 걸린 한전…"이대로 가면 올해 30조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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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7.8조 적자 '사상최대'한국전력이 올 1분기에만 8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적자를 내면서 시장에선 한전이 벼랑 끝에 몰렸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당장 기업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적자폭이 커지면서다. 한전은 보유 부동산과 해외 석탄발전소 매각 등 자구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적자를 메우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 없으면 한전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개월 적자가 작년 한해보다 많아
에너지값 급등·탈원전 여파에
전력 구매가격은 치솟았는데
전기요금은 사실상 제자리
자산 매각 등 비상대책도 한계
손실 늘어나면 결국 국민부담
시장선 "전기료 인상 불가피"
○연료비 급등과 탈원전 탓
한전이 올 1분기 기록한 7조7869억원의 영업적자는 역대 최대다. 지난해 연간 적자가 5조8601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는데, 올해는 단 한 분기 만에 이보다 훨씬 많은 적자를 낸 것이다. 당초 증권가에선 한전의 1분기 영업적자가 5조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보다 훨씬 상황이 좋지 않았다.한전 손실이 급증한 건 무엇보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지만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올 1분기 액화천연가스(LNG)와 유연탄은 전년 대비 각각 142%, 191% 급등했다. 이 여파로 한전의 전력구매단가(전력도매가·SMP)는 올 1분기 ㎾h당 180.5원까지 올랐다. 1년 전(76.5원)에 비해 135% 뛰었다. 이에 반해 한전이 가정이나 공장 등에 전기를 공급할 때 적용하는 전력판매가는 올 1분기 ㎾h당 110.4원에 그쳤다. 1년 전(107.8원)과 별 차이가 없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발전단가가 비싼 LNG 발전을 늘린 점도 적자폭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하나금융투자는 지금 추세가 이어지면 한전의 올해 연간 영업적자가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NH투자증권과 메리츠증권 등은 올해 영업적자를 22조~23조원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데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할지 불확실하다는 게 증권사들이 이런 전망을 내놓는 이유다.문재인 정부는 국제 에너지값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하기 위해 2020년 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했다. 이에 따라 연료비 연동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커지는 전기료 인상 필요성
사상 최대 적자 늪에 빠진 한전은 일단 고강도 자구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전은 13일 1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하면서 발전 자회사와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뒤 보유 중인 출자 지분과 부동산을 매각해 긴급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운영·건설 중인 모든 해외 석탄발전소도 매각 대상에 포함했다. 정부의 원전 생태계 복원 계획에 맞춰 발전단가가 싼 원전 이용률을 높이는 방안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하기로 했다.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게 에너지업계와 시장의 중론이다. 연료비 급등의 영향으로 프랑스와 영국, 스페인, 일본 등 주요 해외 국가도 잇따라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있다. 작년 1월에 비해 스페인과 일본은 전기요금을 각각 87%, 34% 인상했다. 영국도 지난 4월 전기료 54% 인상 방안을 발표했다. 한전 관계자는 “해외 전력 판매사들도 연료비 급등으로 심각한 재무적 위기에 빠져 있다”며 “영국(30개) 일본(14개) 독일(39개) 스페인(25개) 등에서 전력 판매사들이 잇따라 파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기료 인상 억제로 한전이 떠안은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한전은 2008년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하자 6680억원의 공적 자금을 받아 손실을 메웠다. 이어 6년간 전기료를 41.6% 올려야 했다. 당장 인기에 급급해 전기요금 인상을 미뤘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전기요금을 올리는 상황이 재연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전기요금과 관련해 ‘원가주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분 일부를 전기요금에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고물가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업계에선 한전의 고강도 자구 노력과 함께 정부도 전기요금 현실화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