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 회수 압박 커질라"…예비 상장사들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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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시장 급랭에 '직격탄'“파티가 끝났으니 이제 청구서를 받아들여야죠.”(글로벌 투자은행 고위 관계자)
"이러다 물리는 거 아니냐"
뭉칫돈 투자한 FI들도 '긴장'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국내 자본시장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였다. 실적이 증명되지 않은 기업들도 프리IPO 시장에 뛰어들어 현금을 조달했고 이 과정에서 조(兆) 단위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사모펀드(PEF) 등 재무적투자자(FI)들도 증시 호황 덕분에 1년도 안 돼 원금 대비 수배의 수익을 거뒀다.하지만 기업공개(IPO) 시장이 급랭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토종 앱스토어 업체인 원스토어는 최근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에 실패해 상장을 철회했다. 공모가를 낮춰 상장을 추진하려 했지만 2019년 키움인베스트먼트-SKSPE의 프리IPO 때 몸값보다 낮은 공모가가 책정되면서 결국 상장이 무산됐다. IPO 시장이 회복되지 못하면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될 것으로 투자은행(IB)업계는 우려하고 있다.많은 비상장 기업이 프리IPO 과정에서 약속한 ‘IPO 기한 및 수익률 보장 조항’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IPO 시장이 조기에 회복하지 않으면 이들 조항은 예비상장기업 또는 그 모회사들에 막대한 재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SK쉴더스, 원스토어 등 자회사 두 개가 올 들어 잇따라 상장에 실패한 SK스퀘어가 대표적이다. SK스퀘어는 또 다른 자회사인 11번가가 적자에 허덕이던 2018년 국민연금과 PEF 운용사 H&Q로부터 프리IPO 방식으로 5000억원을 수혈받았다. 이 과정에서 5년 내 상장에 실패할 경우 투자자에게 원금에 연 3.5%의 복리를 붙여 갚기로 약속했다. 11번가의 IPO 작업이 순항하지 못하면 SK스퀘어는 투자금 회수로 큰 재무 부담을 질 수 있다.최근 상장 절차에 들어간 LG CNS도 2020년 맥쿼리PE에 회사 지분 35%를 9500억원에 매각하면서 3년 내 IPO 절차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맥쿼리PE는 향후 IPO에 실패할 경우 LG 측과 합의해 원금과 일정 수익률을 얹어 돌려받을 수 있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SK에코플랜트도 PEF와 자산운용사 등을 대상으로 1조2000억원을 조달하면서 기한 내 IPO에 실패할 경우 우선배당권을 보장하고 금리를 대폭 올려주기로 했다.
하반기 대어인 컬리의 IPO 성공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는 지난해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2500억원을 투자받으면서 4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공모 시장에서 그 이상으로 평가받지 못하면 IPO가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IB업계 관계자는 “컬리 IPO가 무산되면 투자자의 회수 요청을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PEF에 상장을 약속한 기한이 다가온 카카오모빌리티와 대규모 자금을 수혈받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도 약속한 IPO 시기가 늦춰질 경우 의사결정에 투자자의 입김이 거세지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프리IPO를 통해 앞다퉈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 반열에 오른 회사들도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유니콘 기업은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 ‘일정 기한까지 IPO를 추진하겠다’는 등의 투자금 회수 방안을 보장하는 게 일반적이어서다.
주가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믿고 대규모 투자에 나섰던 FI들도 ‘물린 게 아니냐’며 바짝 긴장한 분위기다. 작년까지는 프리IPO를 따내기 위해 앞다퉈 경쟁했지만 최근엔 한층 깐깐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CJ ENM은 최근 자사 OTT 자회사인 티빙에 25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투자자에 유사시 원금과 일정 수익률을 돌려준다는 보장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차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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