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보이지 않는 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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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석 건축가 komagroup@hanmail.net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되고 해외여행 부담이 줄어든 이달 초, 스태프와 프랑스를 거쳐 독일·스위스를 다녀왔다. 위드 코로나임에도 유럽의 도심 공원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도서관은 젊은이로 가득 찼다. 카페에선 마스크 없이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실내외 온천욕장에도 다양한 인종의 남녀노소가 온전한 해방을 느꼈다.
이곳에서는 정부가 값싼 구호(救護)로 과시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낯선 우리 이방인들에게 마스크 착용의 부담이나 격리를 강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엄혹한 우리의 코로나 시국에 비해, 그들은 어떻게 유사 환경에서도 자유와 풍요를 잃지 않고 사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배려와 겸양의 고상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기 때문일 것이다. 엘레강스(elegance)란 말, 즉 고상함은 과시하지 않고서도 배려하며 행동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서로 자연스럽게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나온다.그들은 도시를 조성할 때도 안전과 계몽을 빙자해 굵은 난간이나 번쩍이는 가로등을 설치하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건물을 뒤덮는 간판이나 선동적 현수막을 도로에 내걸지 않는다. 튀는 구조물로 주변 전경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들도 수려하고 험준한 지형을 지녔기에 다양한 규제 장치를 두지만, 자연을 자연답게,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하면서 안전에 충실한 최소의 구조물을 설치한다. 풍요로운 삶을 물려받은 선진국에서 얻은 교훈은, 유산을 고상하게 그리고 더 자유롭게 누리려고 애쓴다는 사실이다.
단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쾌청하고 자유롭게 시내 거리를 활보했던 우리에게 공항의 귀국 심사대는 꽤 생경했다. 유럽에선 전용 검사소에서조차 전신 방호복 차림의 요원들을 볼 수 없었는데, 우리 공항에선 모두가 전신 방호복과 안면보호용 투명 마스크(페이스실드)를 착용하고 있었다.
최종 출발지에서도 한국 입국자들만 동일 내용의 서류를 여러 차례 반복 기재해야 했다. 심지어 확인도 하지 않을 설문지 작성 때문에 공항은 분주했다. 인천공항은 마치 종합병원 로비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검사를 거부하는 외국인은 추방한다는 배타적 문구도 보였다. 3차 코로나 백신증명서, 48시간 유효한 유전자증폭(PCR) 검사 확인서를 위해 현지의 코로나19 검사소에서 어렵게 고비용을 들여 검사받았지만 입국 24시간 이내에 PCR 결과를 다시 보고해야 했다.
어쩌면 이런 한국의 방역 시스템이 내국인들에게는 뿌듯한 자부심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절차가 과도하고 부자연스럽다면 이미 비합리적이다. 우리네 상황이 유럽의 국가들과 그리 다를 바 없고, 단 몇 시간의 비행을 했을 뿐인데, 우리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마치 속박의 세계로 옮겨 온 기분이 들었다.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통해 음성이 나오면 격리를 면할 수 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