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그래머'를 아십니까? 그들이 그리는 리걸테크의 미래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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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리걸테크(법률 정보 스타트업) 시장 규모는 2조원을 훌쩍 넘습니다. 유니콘을 바라보는 관련 스타트업도 20여곳이 활동 중이죠. 최근 미국의 최대 리걸테크 행사에 다녀온 2명의 변호그래머(변호사+프로그래머)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그들이 들려준 미국 리걸테크의 발전 속도는 상상 이상입니다. AI가 서면 서류를 대신 작성하고 변호사를 소개시켜주는 수준을 넘어 판결 결과와 형량 등을 예측하기도 합니다. 미국 리걸테크의 현재를 통해 한국 리걸테크의 미래를 엿봅니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을 느꼈습니다.”리걸테크(법률정보기업) 스타트업 로앤컴퍼니는 최근까지도 변호사단체와의 영역 다툼으로 ‘뜨거운 감자’에 올랐습니다. 이들의 서비스 로톡에 녹아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기존 법률시장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면서입니다.
개발을 이끈 로앤컴퍼니 법률AI연구소의 안기순 소장(변호사), 이상후 변호사는 언제나 법조계 시선을 한 몸에 받습니다. 변호사이자 프로그래머인 이들은 규제와 소송으로 점철된 국내 시장을 잠시 뒤로하고 특별한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북미 최대 리걸테크 행사인 ‘TECHSHOW(테크쇼)’와 ‘Legal Week(리걸 위크)’에 국내 스타트업 최초로 참여한 것입니다.
이들은 “법률과 AI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인정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207개 글로벌 리걸테크와 함께한 두 남자의 미국 유람기에는 ‘15년 뒤’ 한국의 미래가 녹아있었습니다.
ABA는 미국 변호사들이 준수해야 할 규칙인 ‘모델 룰(Model Rule)’을 정의합니다. 각 주 단위 변호사회가 이를 참조해 각자 규정을 만듭니다. 일종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모델 룰에는 국내와는 다른 흥미로운 항목이 있는데, 바로 ‘기술 역량의 의무(Duty of Technology Competence)’입니다. “기술과 관련된 이점 및 위험을 포함해, 법률 및 관행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미국 39개 주와 캐나다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변호사라고 정보기술(IT)에 어두워선 안 된다”를 의무로 삼은 것입니다. 안 변호사는 “변호사협회가 이런 기술 콘퍼런스를 35년씩 하고 있다는 자체가 상징적”이라며 “AI 시대에 변호사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킬 수 있도록 국내서도 대두되어야 할 움직임”이라고 했습니다.테크쇼의 인상 깊었던 장면을 묻자, 단번에 돌아왔던 내용도 ‘분위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리걸테크 스타트업 14곳이 변호사들 앞에서 각각 ‘3분 발표’에 나서는 ‘pitch competition’은 이 변호사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주로 신생 업체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현장이었는데, 가벼운 분위기의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많았습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변호사들의 역시 질문을 쏟아내며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눴습니다. “IT 기술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변호사와 리걸테크 업체들의 교류가 이미 익숙한 상황임을 느끼게 했다”는 평가입니다.
기술의 ‘질’ 역시도 상당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법률 특화 화상채팅 솔루션부터, 배심원들의 안면을 분석해 변호사의 변론 중 어떤 발언에 반응하는지 잡아내는 AI까지 있었다”며 “국내라면 당분간은 상상하기 어려운 서비스들이 신생 스타트업 대표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최고경영자(CEO) 절반 이상이 여성인 점도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엠브로기는 15년 전 있었던 미국 ‘아보닷컴’ 사태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기자입니다. 로톡과 똑 닮은 미국의 서비스인데, 2007년 처음 나왔을 때는 국내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안 변호사는 “아보닷컴은 로톡에는 없는 변호사 랭킹 시스템을 도입해 변호사별 점수를 1점부터 10점까지 평가했다”고 했습니다. 출시 9일 만에 “사기극”이라며 변호사들과 소송전에 돌입한 아보닷컴은 불과 5개월 만에 승리를 거둡니다. 안 변호사는 “소송을 제기한 변호사들이 현재 아보닷컴에 프로필이 게재된 점이 역사적 아이러니”라고 했습니다. 로톡의 국내 시장 상황을 전해들은 엠브로기가 현장에서 남긴 발언은 “한국 법률시장이 IT를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 문제(matter of time)’”란 말이었습니다.대학 교수와 리걸테크 업체 대표의 토론회는 고민거릴 안겼습니다. 마이클 재커맨 미 노스웨스턴대 프리츠커법대 교수와 리걸테크 스타트업 클리어브리프의 재클린 섀퍼 최고경영자(CEO)는 이튿날 ‘서면 작성에서 AI 도구 분석을 통한 통찰력’을 진행했습니다. 안 변호사는 “AI를 도입해야 하는가를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도입을 전제한 상태에서 어떻게 리스크를 최소화할 것인지를 논하는 것이 국내와 달랐다”며 “도구로써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정확한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부스가 많았던 리걸 위크에선 역으로 질문 세례가 쏟아졌습니다. 두 변호사가 리걸테크 업체 부스에 방문할 때면 “한국에서 온 사람은 처음이다”며 국내 리걸테크 시장 상황을 궁금해했습니다. 국내서 분투 중인 안 변호사의 답변을 듣고는 “경제 규모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며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국의 경우, 이미 기업가치 1조원을 넘어선 유니콘 리걸테크가 20개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관련 시장의 투자 규모는 약 19억6000억달러(2조5300억원)에 달합니다.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리걸테크 기업은 사업 유형이 다양합니다. ‘서면 자동 작성’ ‘변호사 검색 및 중개’ ‘법률 사무 관리’ ‘법률 정보 리서치’ 등입니다. ‘AI 배심원 분석’과 같은 법률 자문 및 전략 수립이나, 우리나라엔 없는 ‘e-디스커버리 제도(전자증거 개시)’에 기반한 리걸테크 업체들도 다수죠. 반면 국내 리걸테크 기술은 아직도 태동기에 가깝습니다. 30여개 업체가 법률 정보 검색, 변호사 검색 등 일부 영역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국내 리걸테크 시장 투자 규모는 5년간 135억원에 불과합니다.
대륙법을 따르는 국내에선 현재까지 관련 제도가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수년간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지만, 소송 비용을 늘릴 수 있다는 반대에 막혀 지연을 거듭해왔습니다. 안 변호사는 “소송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어떤 문서가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증거의 구조적 편재’는 소송의 공전이나 지연을 부를 수 있다”며 “리걸테크 산업의 확장은 디스커버리 제도의 단점인 소송 비용과 시간 증가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자료가 종이 문서로 저장되던 과거와는 달리 클라우드 저장 기술이 발달했고, 글을 읽고 분석하는 자연어처리(NLP)와 같은 AI 기술이 있기 때문에 법률 소비자와 리걸테크 업체가 공생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입니다.
데이터 공개가 더 명확히 되어야 한다는 점도 이들이 느낀 주요 내용입니다. 현장의 리걸테크 업체들 공통점은 모두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내선 시도되지 못하는 기술에 도전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우리 법원은 아직 판결문 공개에도 소극적이지만, 미국은 판결문 공개는 물론 당사자가 소송에 제출한 주장, 증거 서류 일체가 공개돼 있다”며 “법정 절차가 모두 법원에 집중된 국내 상황에서 데이터의 공개는 법관 업무 부담을 줄이면서도 법률 소비자들이 신속한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변호사단체는 2015년과 2016년, 2020년 세 차례에 걸쳐 로앤컴퍼니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앞서 두 건은 각각 1개월, 4개월 만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불기소 처분이 결정됐습니다. 2020년 직역수호변호사단이 고발한 사건도 경찰과 검찰을 거쳐 지난달 11일 ‘혐의없음’으로 종결됐습니다.
수사기관은 로톡의 서비스를 포털사이트에서 이용되는 ‘유료 키워드 광고’와 같은 구조로 내다봤습니다. 로톡은 일정 광고료를 받고 변호사들을 플랫폼에 노출해 주는데, 변호사단체는 이를 ‘특정 변호사를 소개·알선·유인한다’고 보며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진행했습니다. 다만 검찰은 “로톡이 광고료 이외의 상담 수임 대가를 받지 않는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또 ‘변호사가 아님에도 금품을 받고 AI 형량 예측 서비스 등을 통해 법률 사무를 제공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법률 사무 취급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합법성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수년간의 공방이 로톡의 AI 서비스를 위축시켰습니다. AI 형량 예측 서비스는 2020년 11월 첫 출시된 이래 2021년 9월 서비스 중단까지 무료로 배포됐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가 플랫폼 이용 변호사에 대한 징계 조사에 돌입함에 따라 서비스를 결국 종료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이외에도 많은 준비를 거듭했지만 좌초된 서비스가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검찰의 판단은 리걸테크 업체들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서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로톡이 지난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위헌무효확인심판청구도 긍정적 판결이 있었습니다. 대한변협이 로톡 서비스를 쓰는 변호사들을 징계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부분 위헌 결론이 난 것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대한변협의 변호사 징계 조치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됨을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법적 채비가 끝나면, 다음 단계인 ‘AI의 법률 사무 취급 논의’나 ‘법률 데이터 공개’와 같은 토의도 국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안 변호사는 “글로벌 리걸테크 업체 수는 2000개이며, 대단위 파라미터(매개변수)를 탑재한 ‘초거대 AI’의 능력이 7세 어린아이 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국내 변호사 수가 3만 명 시대로 접어듦에 따라 기술의 조력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동료 변호사들과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도구로서의 서비스’를 지속해서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 한가지 더
그들은 누구?...개발자가 된 변호사, 변호사가 된 개발자두 변호사는 현재도 치열한 직역 갈등의 가운데에 있습니다. 변호사이자 프로그래머라는 두 직업을 가진 이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안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을 37회로 통과했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시작한 코딩은 그를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군법무관을 마치고 입사한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그는 법령과 판례 등을 검색할 수 있는 ‘로앤비’를 만들게 됐습니다. 꾸준히 가져왔던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 덕분이었습니다. 디지털 전환이 더디던 법조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로앤비는 태평양의 자회사가 되어 7년간 안 대표가 이끌었습니다.
2014년엔 AI 스타트업 텍스트팩토리를 창업했습니다. AI 기반 챗봇을 만드는 업체였습니다. 국내서 ‘알파고’가 대국을 두기 2년 전이었습니다. 꾸준히 해외 사이트를 통해 코딩 공부와 AI 개발을 진행했던 안 변호사는 결국 2019년 텍스트팩토리를 로앤컴퍼니에 매각하고 내부의 법률AI연구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안 변호사를 따르던 인물이었습니다. KAIST에서 바이오및뇌공학과 전산학을 공부한 그는 2010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며 법조계에 발을 딛게 됐습니다. 대학에서 해킹 동아리 활동을 하며 컴퓨터를 친숙히 다뤘던 그는 연세대 재학 시절 김본환 로앤컴퍼니 대표와 선후배로 인연을 맺게 됩니다. 졸업 후 검사·변호사로 일하면서도 법과 IT의 융합을 주시했던 그는, 법조계 ‘스타 개발자’던 안 변호사가 로앤컴퍼니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법무법인 광장을 그만뒀습니다. “국내 최다 판례 데이터에 AI 기능을 접목한 검색 서비스를 개발해보자”는 안 변호사의 제의에 마음을 뺏긴 것입니다.두 변호사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미국변호사협회(ABA) 같은 단체도 망한다”고 시종일관 강조했습니다. 젊은 변호사들이 AI에 익숙해져야 하는 이유도, 이들에게 IT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당위도 '분수령'이 코앞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우리의 인연을 이었듯, 더 많은 변호사와 법조계 혁신을 함께하는 것”이 이들 바람입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을 느꼈습니다.”리걸테크(법률정보기업) 스타트업 로앤컴퍼니는 최근까지도 변호사단체와의 영역 다툼으로 ‘뜨거운 감자’에 올랐습니다. 이들의 서비스 로톡에 녹아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기존 법률시장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면서입니다.
개발을 이끈 로앤컴퍼니 법률AI연구소의 안기순 소장(변호사), 이상후 변호사는 언제나 법조계 시선을 한 몸에 받습니다. 변호사이자 프로그래머인 이들은 규제와 소송으로 점철된 국내 시장을 잠시 뒤로하고 특별한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북미 최대 리걸테크 행사인 ‘TECHSHOW(테크쇼)’와 ‘Legal Week(리걸 위크)’에 국내 스타트업 최초로 참여한 것입니다.
이들은 “법률과 AI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인정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207개 글로벌 리걸테크와 함께한 두 남자의 미국 유람기에는 ‘15년 뒤’ 한국의 미래가 녹아있었습니다.
AI 도입 인정한 미국, '혁신 단계' 달랐다
테크쇼는 미국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 ABA)가 개최하는 법률 기술 콘퍼런스입니다. 1987년부터 시작된 전통 있는 행사입니다. 올해는 ABA 본부가 있는 시카고에서 현지 시각 3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렸습니다.ABA는 미국 변호사들이 준수해야 할 규칙인 ‘모델 룰(Model Rule)’을 정의합니다. 각 주 단위 변호사회가 이를 참조해 각자 규정을 만듭니다. 일종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모델 룰에는 국내와는 다른 흥미로운 항목이 있는데, 바로 ‘기술 역량의 의무(Duty of Technology Competence)’입니다. “기술과 관련된 이점 및 위험을 포함해, 법률 및 관행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미국 39개 주와 캐나다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변호사라고 정보기술(IT)에 어두워선 안 된다”를 의무로 삼은 것입니다. 안 변호사는 “변호사협회가 이런 기술 콘퍼런스를 35년씩 하고 있다는 자체가 상징적”이라며 “AI 시대에 변호사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킬 수 있도록 국내서도 대두되어야 할 움직임”이라고 했습니다.테크쇼의 인상 깊었던 장면을 묻자, 단번에 돌아왔던 내용도 ‘분위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리걸테크 스타트업 14곳이 변호사들 앞에서 각각 ‘3분 발표’에 나서는 ‘pitch competition’은 이 변호사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주로 신생 업체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현장이었는데, 가벼운 분위기의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많았습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변호사들의 역시 질문을 쏟아내며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눴습니다. “IT 기술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변호사와 리걸테크 업체들의 교류가 이미 익숙한 상황임을 느끼게 했다”는 평가입니다.
기술의 ‘질’ 역시도 상당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법률 특화 화상채팅 솔루션부터, 배심원들의 안면을 분석해 변호사의 변론 중 어떤 발언에 반응하는지 잡아내는 AI까지 있었다”며 “국내라면 당분간은 상상하기 어려운 서비스들이 신생 스타트업 대표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최고경영자(CEO) 절반 이상이 여성인 점도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15년 전 美와 같다…"리걸테크는 ‘시간 문제’"
안 변호사는 유명 인사를 만났습니다. 변호사이자 저널리스트인 밥 엠브로기와 리걸테크 산업에 관해 얘기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테크쇼 부스를 누비던 엠브로기를 안 변호사가 알아보고 접근했습니다.엠브로기는 15년 전 있었던 미국 ‘아보닷컴’ 사태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기자입니다. 로톡과 똑 닮은 미국의 서비스인데, 2007년 처음 나왔을 때는 국내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안 변호사는 “아보닷컴은 로톡에는 없는 변호사 랭킹 시스템을 도입해 변호사별 점수를 1점부터 10점까지 평가했다”고 했습니다. 출시 9일 만에 “사기극”이라며 변호사들과 소송전에 돌입한 아보닷컴은 불과 5개월 만에 승리를 거둡니다. 안 변호사는 “소송을 제기한 변호사들이 현재 아보닷컴에 프로필이 게재된 점이 역사적 아이러니”라고 했습니다. 로톡의 국내 시장 상황을 전해들은 엠브로기가 현장에서 남긴 발언은 “한국 법률시장이 IT를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 문제(matter of time)’”란 말이었습니다.대학 교수와 리걸테크 업체 대표의 토론회는 고민거릴 안겼습니다. 마이클 재커맨 미 노스웨스턴대 프리츠커법대 교수와 리걸테크 스타트업 클리어브리프의 재클린 섀퍼 최고경영자(CEO)는 이튿날 ‘서면 작성에서 AI 도구 분석을 통한 통찰력’을 진행했습니다. 안 변호사는 “AI를 도입해야 하는가를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도입을 전제한 상태에서 어떻게 리스크를 최소화할 것인지를 논하는 것이 국내와 달랐다”며 “도구로써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정확한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글로벌 리걸테크 유니콘, 25개 넘어선다
일주일 뒤엔 뉴욕에서 ‘리걸 위크’가 열렸습니다. 두 변호사는 다시 2시간 남짓한 비행길에 올랐습니다. 8일부터 나흘간 개최된 리걸 위크는 글로벌 데이터 기업 ALM이 주관합니다. 주로 법조계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 동향 및 기술, 인재 등 다방면 정보를 교류하는 콘퍼런스인데, 올해는 125개에 달하는 리걸테크 업체가 참가해 IT 전시회를 방불케 했습니다.부스가 많았던 리걸 위크에선 역으로 질문 세례가 쏟아졌습니다. 두 변호사가 리걸테크 업체 부스에 방문할 때면 “한국에서 온 사람은 처음이다”며 국내 리걸테크 시장 상황을 궁금해했습니다. 국내서 분투 중인 안 변호사의 답변을 듣고는 “경제 규모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며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국의 경우, 이미 기업가치 1조원을 넘어선 유니콘 리걸테크가 20개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관련 시장의 투자 규모는 약 19억6000억달러(2조5300억원)에 달합니다.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리걸테크 기업은 사업 유형이 다양합니다. ‘서면 자동 작성’ ‘변호사 검색 및 중개’ ‘법률 사무 관리’ ‘법률 정보 리서치’ 등입니다. ‘AI 배심원 분석’과 같은 법률 자문 및 전략 수립이나, 우리나라엔 없는 ‘e-디스커버리 제도(전자증거 개시)’에 기반한 리걸테크 업체들도 다수죠. 반면 국내 리걸테크 기술은 아직도 태동기에 가깝습니다. 30여개 업체가 법률 정보 검색, 변호사 검색 등 일부 영역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국내 리걸테크 시장 투자 규모는 5년간 135억원에 불과합니다.
'e-디스커버리'가 바꾼 리걸테크 시장
원인은 제도 및 규제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영미법에서 리걸테크 시장이 수혜를 누린 데는 우선 ‘디스커버리 제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재판이 개시되기 전 각 당사자가 서로의 증거를 상호 공개하는 형태로, 쟁점을 명확히 하고 공정한 재판을 진행할 목적으로 마련된 제도입니다. 2006년엔 전자문서까지 범위를 확장한 전자증거 개시제도가 시작되며 리걸테크 기업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대륙법을 따르는 국내에선 현재까지 관련 제도가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수년간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지만, 소송 비용을 늘릴 수 있다는 반대에 막혀 지연을 거듭해왔습니다. 안 변호사는 “소송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어떤 문서가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증거의 구조적 편재’는 소송의 공전이나 지연을 부를 수 있다”며 “리걸테크 산업의 확장은 디스커버리 제도의 단점인 소송 비용과 시간 증가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자료가 종이 문서로 저장되던 과거와는 달리 클라우드 저장 기술이 발달했고, 글을 읽고 분석하는 자연어처리(NLP)와 같은 AI 기술이 있기 때문에 법률 소비자와 리걸테크 업체가 공생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입니다.
데이터 공개가 더 명확히 되어야 한다는 점도 이들이 느낀 주요 내용입니다. 현장의 리걸테크 업체들 공통점은 모두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내선 시도되지 못하는 기술에 도전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우리 법원은 아직 판결문 공개에도 소극적이지만, 미국은 판결문 공개는 물론 당사자가 소송에 제출한 주장, 증거 서류 일체가 공개돼 있다”며 “법정 절차가 모두 법원에 집중된 국내 상황에서 데이터의 공개는 법관 업무 부담을 줄이면서도 법률 소비자들이 신속한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절반의 승리…그래도 꿈꾸는 두 남자
로앤컴퍼니 신기술 연구 조직인 법률AI연구소는 AI 기반 형량 예측 서비스와 NLP를 이용한 판례 검색 서비스 ‘빅케이스’ 등 많은 결과물을 내왔습니다. 기술력에 대한 두 변호사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문제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터져 나와, 오랜 시간 이어졌습니다. 이른바 ‘제2의 타다’ 사태로 불리기도 하는 로톡과 변호사단체의 공방이었습니다.변호사단체는 2015년과 2016년, 2020년 세 차례에 걸쳐 로앤컴퍼니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앞서 두 건은 각각 1개월, 4개월 만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불기소 처분이 결정됐습니다. 2020년 직역수호변호사단이 고발한 사건도 경찰과 검찰을 거쳐 지난달 11일 ‘혐의없음’으로 종결됐습니다.
수사기관은 로톡의 서비스를 포털사이트에서 이용되는 ‘유료 키워드 광고’와 같은 구조로 내다봤습니다. 로톡은 일정 광고료를 받고 변호사들을 플랫폼에 노출해 주는데, 변호사단체는 이를 ‘특정 변호사를 소개·알선·유인한다’고 보며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진행했습니다. 다만 검찰은 “로톡이 광고료 이외의 상담 수임 대가를 받지 않는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또 ‘변호사가 아님에도 금품을 받고 AI 형량 예측 서비스 등을 통해 법률 사무를 제공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법률 사무 취급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합법성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수년간의 공방이 로톡의 AI 서비스를 위축시켰습니다. AI 형량 예측 서비스는 2020년 11월 첫 출시된 이래 2021년 9월 서비스 중단까지 무료로 배포됐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가 플랫폼 이용 변호사에 대한 징계 조사에 돌입함에 따라 서비스를 결국 종료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이외에도 많은 준비를 거듭했지만 좌초된 서비스가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검찰의 판단은 리걸테크 업체들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서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로톡이 지난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위헌무효확인심판청구도 긍정적 판결이 있었습니다. 대한변협이 로톡 서비스를 쓰는 변호사들을 징계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부분 위헌 결론이 난 것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대한변협의 변호사 징계 조치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됨을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법적 채비가 끝나면, 다음 단계인 ‘AI의 법률 사무 취급 논의’나 ‘법률 데이터 공개’와 같은 토의도 국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안 변호사는 “글로벌 리걸테크 업체 수는 2000개이며, 대단위 파라미터(매개변수)를 탑재한 ‘초거대 AI’의 능력이 7세 어린아이 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국내 변호사 수가 3만 명 시대로 접어듦에 따라 기술의 조력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동료 변호사들과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도구로서의 서비스’를 지속해서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 한가지 더
그들은 누구?...개발자가 된 변호사, 변호사가 된 개발자두 변호사는 현재도 치열한 직역 갈등의 가운데에 있습니다. 변호사이자 프로그래머라는 두 직업을 가진 이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안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을 37회로 통과했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시작한 코딩은 그를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군법무관을 마치고 입사한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그는 법령과 판례 등을 검색할 수 있는 ‘로앤비’를 만들게 됐습니다. 꾸준히 가져왔던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 덕분이었습니다. 디지털 전환이 더디던 법조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로앤비는 태평양의 자회사가 되어 7년간 안 대표가 이끌었습니다.
2014년엔 AI 스타트업 텍스트팩토리를 창업했습니다. AI 기반 챗봇을 만드는 업체였습니다. 국내서 ‘알파고’가 대국을 두기 2년 전이었습니다. 꾸준히 해외 사이트를 통해 코딩 공부와 AI 개발을 진행했던 안 변호사는 결국 2019년 텍스트팩토리를 로앤컴퍼니에 매각하고 내부의 법률AI연구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안 변호사를 따르던 인물이었습니다. KAIST에서 바이오및뇌공학과 전산학을 공부한 그는 2010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며 법조계에 발을 딛게 됐습니다. 대학에서 해킹 동아리 활동을 하며 컴퓨터를 친숙히 다뤘던 그는 연세대 재학 시절 김본환 로앤컴퍼니 대표와 선후배로 인연을 맺게 됩니다. 졸업 후 검사·변호사로 일하면서도 법과 IT의 융합을 주시했던 그는, 법조계 ‘스타 개발자’던 안 변호사가 로앤컴퍼니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법무법인 광장을 그만뒀습니다. “국내 최다 판례 데이터에 AI 기능을 접목한 검색 서비스를 개발해보자”는 안 변호사의 제의에 마음을 뺏긴 것입니다.두 변호사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미국변호사협회(ABA) 같은 단체도 망한다”고 시종일관 강조했습니다. 젊은 변호사들이 AI에 익숙해져야 하는 이유도, 이들에게 IT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당위도 '분수령'이 코앞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우리의 인연을 이었듯, 더 많은 변호사와 법조계 혁신을 함께하는 것”이 이들 바람입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