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기름값 끌어올리는 미국의 엉망진창 외교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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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중동정책으로 사우디와 대립, 이란 핵협상은 교착상태
중간선거 전 깜짝합의하나...중국 경제 포위망 출범 주목
인플레이션의 꼭지가 어디인 지, 긴축 속도는 얼마나 빨라질 지, 연착륙은 가능한 지 여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그나마 솔직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지난 12일(이하 각국의 현지시간) 미국 내 경제 팟캐스트인 마켓플레이스에 출연해 "금리를 더 빨리 올렸으면 좋았을텐데"라며 뒤늦은 후회를 할 때 발언입니다.
당시 파월 의장은 "경기 연착륙 여부는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요소에 달렸다"(It may actually depend on factors that we don’t control.)고 고백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요인을 통제 불가능한 예로 들었습니다.
그럼 지정학적 요인은 누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게 모범답안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겠지만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산유국과의 외교관계를 정상으로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 시점에선 미국의 중동 외교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앉으나 서나 중국 견제만 외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한국 일본을 잇따라 방문해 중국 포위망을 짜려고 합니다. 외교의 시간을 맞아 인플레이션의 방패가 됐음 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외교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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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코를 다시 납작하게 만든 아람코
아람코는 2019년 상장과 함께 세계 최대 시총 기업이 됐다가 코로나19 이후 빅테크의 전성시대를 맞아 2020년 8월 애플(2조3800억달러)에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그러다 1년9개월 만에 글로벌 최대 기업으로 재등극했습니다. 아람코의 시총은 지난 13일 기준으로 2조4800억달러였습니다.
그리고 아람코는 1분기에 순이익이 395억달러로 1년 전보다 82%나 늘어났습니다. 아람코가 떠받치는 경제여서 사우디아라비아 경제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 경제가 올해 7.6%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모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오일플레이션 덕입니다. 이렇게 잘 나가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증산 요구를 들어줄 만한데 중동 국가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유 증산 거부'로 복수하는 사우디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달랐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과 통화했지만 빈살만 왕세자와는 직접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왕세자의 상대 역할을 맡겼습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직책 중 국방장관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었지만 무함마드 왕세자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습니다.
뒤늦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중동 지역에 공을 들이고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비밀리에 사우디를 방문했지만 상황을 되돌리진 못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에 좀 더 일찍 대응했어야 했다"는 파월의 만시지탄과 다를 바 없습니다.
스텝 꼬이는 미국의 중동 외교...영향력 커지는 오일머니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에서 해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협상 당사국 중 미국을 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라도 협상을 마무리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혁명수비대 제재 해제 문제는 미래 합의사항으로 돌리고 일단 합의문에 서명하려 시도했지만 미국에서 거절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공화당과 유태계의 반대로 인해 혁명수비대 제재 해제와 이란 핵협상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미 관료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테러 지정 해제를 위한 조건을 완화하거나 이를 없애지는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쁜 합의보다는 '노딜'이 낫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속내는 복잡합니다. '친 사우디, 반 이란'으로 간명하게 접근한 트럼프 노선과 달리 사우디와 이란을 다 잡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입니다. 양다리 걸치다 아무 것도 못 잡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래도 11월 미국 중간선거 전에 중동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옵니다. 사우디나 이란 중 하나라도 잡아야 인플레이션이 최대 쟁점이 된 중간 선거에서 패배를 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 외교에서도 시험대 오른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2~13일 워싱턴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 정상들과 만나 중국 경제를 견제하는 경제 협의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을 독려했습니다. 이어 한국시간 기준으로 21~22일에 한국을, 23~24일에 일본을 각각 방문합니다.
관건은 어느 나라까지 참여할 지 여부입니다. 한국과 일본 외에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가 참여에 긍정적인 의사를 보이고 있습니다. 베트남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쿼드 국가 중 인도도 빠지고 아세안 국가 중 상당수가 중국 눈치 때문에 동참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IPEF의 성격도 모호합니다. 다자간 경제 협의체라고 하지만 관세를 제외하고 어떤 형태로 중국 경제를 견제하면서 경제 협의 모델을 만들어갈 지 다들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파월은 다시 인플레 통제할 수 있나
이 물음에 대해 파월 의장이 명쾌한 답변을 줄 수 있을까요. 이번 주 파월 의장의 연설일은 17일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콘퍼런스에서입니다.
파월 의장은 지난 12일 마켓플레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을 다섯 단어 이하로 말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인플레이션 재통제"(get inflation back under control)라고 답했습니다. 파월 뿐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중간 선거 전엔 꼬여버린 중동 외교를 바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원흉이 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이 다섯 단어(get inflation back under control)를 외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