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윤석열의 구두

《자유부인》의 작가 정비석은 1962년 신문연재 소설에서 서울대, 연·고대생을 표현한 문장 하나로 큰 고초를 겪었다. “(돈 오십환으로) 고려대 학생은 막걸리를 마시고, 연세대 학생은 구두를 닦고, 서울대 학생은 노트를 산다는 것이다.”

이에 발끈한 연세대생 수백 명이 서울 후암동의 정비석 집과 신문사로 몰려가 연좌시위를 했다. 흡사 자기들을 멋 부리고 사치나 즐기는 ‘제비족’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연세대생들의 반응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편협한 것이었다. 돈 오십환을 가지고 막걸리를 마시면 얼마나 마실 것이며, 노트는 그리 자주 필요한 물품이 아니다. 당시 구두 한번 닦으면 딱 알맞은 돈인데 말이다. 구두는 남자에게 특별한 물건이다. 시계, 벨트와 더불어 남자의 품격을 나타내는 3대 소품 아닌가. 연세대생들이 ‘오버’한 탓에 한국일보 연재소설 《혁명전야》는 딱 3회로 막을 내렸다.“……그러므로 나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이 구두의 주름이 왜 나인지/말하지 못한다/……한걸음 한걸음 나를 떠밀고 가야 했을 때/그때마다 구두에 잡힌 이 주름이/나인지/아닌지/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긴 시를 즐겨 쓰는 윤성학 시인의 ‘구두를 위한 삼단논법’의 일부다. 복잡한 식당에서 신발을 찾느라 식당 직원과 실랑이를 벌인 일을 두고 시상이 떠올라 쓴 시다. 같은 종류, 같은 크기의 구두라도 잡힌 주름과 뒷굽이 닳은 모양새는 제각기 다를 것이다. 고두현 시인의 해제가 시만큼 와 닿는다. “이력서(履歷書)에 신발 ‘리(履)를 쓰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살아온 길을 뜻하는 ‘이력’은 곧 신발이 걸어온 역사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주말 백화점에 들러 구두를 산 것이 화제다. 국민들은 소탈한 대통령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고, 그가 산 구두 회사의 홈페이지는 ‘광클’로 다운이 됐다. 그러나 촉 있는 측근들이라면 지난 11일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의 말부터 떠올릴 것이다. “이 방 저 방 다니며 다른 분야 업무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그야말로 정말 구두 밑창이 닳아야 한다. 그래야 일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윤 대통령은 새 구두를 신은 첫날 국회 시정연설 뒤 본회의장 전체를 돌며 여야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새 정부 공직자들의 고과 기준은 구두 주름과 밑창이 될 듯하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